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단두대 (문단 편집) == 왜 발명되었는가? == [youtube(Mt4xRTafwaM)] 단두대에 얽힌 여러 가지를 나타낸 카람볼라지(Karambolage)[* 간혹 그림체 때문에 [[Kurzgesagt – In a Nutshell|쿠르트게작트]]인줄 아는 사람들도 있는데, 다르다. 물론 카람볼라지는 쿠르트게작트와 비슷한 형태의 지식영상이긴 하다. 프랑스-독일 합작이며 공영방송에서도 가끔 나간다고 한다.] 영상. 분명 단두대라 하면 사람을 더 효율적으로 죽이기 위해서 발명되었다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단두대는 역설적으로 사형수의 [[인권]]과 [[평등]]을 위해서 발명되었다. '검으로 참수되는 건 고귀하고 명예롭지만 다른 처형은 천박하고 잔학하다'라는 관념은 이미 중세가 끝난 후 냉병기가 도태된 18세기 시점에는 이미 몇 백 년 전의 옛날 이야기라서 별로 상관은 없고,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시 프랑스가 봉건 시대의 잔재로 인해 지방마다 사법 제도가 달랐던 점에 문제가 있었다. 유럽에선 기독교의 영향[* 가톨릭이 교수형으로 죽으면 지옥 가고 참수되는 건 고귀한 죽음이란 식의 교리가 있었다는 뜬소문도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과 18세기에 퍼진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사형을 현실적으로 폐지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인도적인 방식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퍼지고 있었고, 그런 사고의 영향으로 '죄수를 한번에 고통없이 죽일 수 있는' 처형인 참수가 선호받았다. 하지만 봉건 시대에는 각 지역마다 법 체계가 달라서 참수 외에 [[화형]], [[능지형]] 등 별별 처형법이 집행되고 있거나 집행될 수 있었다. 귀족이 처형될 때 참수가 더 많았던 이유는 그것이 딱히 더 고귀하다고 믿어서는 아니고 '상식적으로 더 인도적인' 형을 집행한 것 뿐이다. 프랑스 혁명기는 그런 계몽주의적 이상을 품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던 때였고, 지방의 분권적이고 봉건적인 관행을 파리의 의회에서 분쇄하던 시대였다. 당대 지식인들이 보기에 야만스럽고 구시대적인 다른 처형 방식을 밀어낼 기회였던 것이다. 기요틴 도입을 두고 프랑스 혁명 때문에 사형 수요가 많다거나 참수가 어렵기 때문에 도입되었다고 알려진 경우도 많은데, 이 논리는 도입 목적이 아니라 단두대 도입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논리였다. 위 논쟁이 "전부 참수"로 결정난 후에도 기요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도입 당시에 시민들은 '기요틴으로 처형하면 기존의 일반적인 참수형보다 덜 고통스럽다'는 점에 반대가 심했다. 그 이유는 유럽을 비롯한 많은 전근대 국가에서 사형집행은 참수형이든 교수형이든 마을 사람들에게 오랜 오락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사형을 구경하러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특히나 참수형이 진행되면 사람들은 사형수의 시신에서 피와 기름 등을 가져가려고 노력했다.[* 당시에는 사형수의 피나 기름 등이 악귀를 쫓거나 병을 고친다는 미신이 있었고, 정치적인 이유로 사형을 당할 경우 사형수의 동지나 추종자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피를 손수건 같은 것에 적시기도 했다.] 참수형이 처형 방법이 된 것은 이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참수형을 기요틴으로 바꾼다니까 불만이 심했던 것이었다. 한 마디로 그 시절 사람들에게는 마치 현대로 치면 연극이나 영화, 혹은 프로 스포츠를 중단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이 느껴졌던 것이다. 이를 설득하는 데 동원된 것이 당시 파리의 사형집행인들로, 이들은 소수의 사형집행인들로는 처형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시민들을 설득했고, 실제로도 참수형은 고도의 전문 기술, [[처형검]]과 같은 전문 도구, 집행 시간이 필요하고, 집행인이 직접 목숨을 빼앗아야 하기에[* 집행인도 엄연히 인간이므로 인간을 죽인다는 사실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현대에는 사형 집행인들의 죄책감을 줄이는 방법을 여럿 이용하고 있다. [[총살형]]에 참석하는 집행 병사의 소총 중 실탄을 무작위로 지급하거나, 한국의 사형법도 교수형을 집행할 때 집행자 3명이 하나만 진짜고 나머지는 가짜인 무작위 버튼을 동시에 눌러야 바닥이 열리는 구조로 되어 있다. 다만 '실탄/진짜 버튼은 공포탄/가짜 버튼과 느낌이 미묘하게 달라서 진짜를 집행하는 사람은 그게 자신인 줄 안다'라는 말도 있다.] 사형집행인에게 정신적 고통을 동반하는 처형법이며, 당연히 집행비용과 실패할 확률이 높은 비효율적인 처형수단이었다.[* 프랑스, 특히 파리의 사형집행인(대표적으로 [[샤를 앙리 상송|샤를앙리 상송]])들은 고도의 의학 지식을 배우고 일격사를 위해 검술훈련까지 받는 전문직이지만 그 이전에 단승도 아닌 세습 작위를 가진 '귀족'이었다. 특히 사형 집행이 없는 때에는 의학 지식을 이용하여 부업으로 의사를 하였고 자체 징세권도 있었기 때문에 단두대가 본인들의 직장을 위협한다고 해도 아쉬울 게 없었다. 더욱이 당시 사형집행인의 지위는 법적으로 보장된 것이었기 때문에 단두대가 도입된다 하더라도 '사형을 받아야 할 죄수가 너무 많아서 감당이 안되는 범위를 넘지 않는다면' 단두대를 사용하더라도 칼날을 내리는 집행 자체는 사형집행인이 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시민들도 납득하여 단두대의 도입이 받아들여졌다. 이처럼 단두대의 도입은 당시 시민들의 의식과 사형도구의 도입 명분의 합의가 이뤄진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이후 기요틴의 용도를 생각하면 매우 아이러니한 사실로 보이나, 그 당시에는 실제로 [[고문 바퀴|차륜형]], [[능지형]], 기타 고문을 동반한 처형이 단두대 참수형으로 바뀌었다는 사실 역시 매우 급진적인 진보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