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단종(조선) (문단 편집) == 휘 == 본명은 '''이홍위(李弘暐)'''로 특이하게도 이름이 두 글자이다. 조선의 임금들 중 이름이 두 글자인 사람은 [[이홍위|단종]]과 [[이방원|태종]] 둘뿐이고, 다른 왕들은 원래부터 외자였거나 외자로 [[개명]]했다.[* [[태조(조선)|태조 이성계]]는 이단으로, [[정종(조선)|정종 이방과]]는 이경으로, [[철종(조선)|철종 이원범]]은 이변으로, [[인종(조선)|인종 이억명]]은 이호로, [[고종(대한제국)|고종 이명복]]은 이재황, 이형, 이희 등으로 고쳤다.] 한국에서는 고려 때부터 [[피휘]] 때문에 임금이나 왕자군은 죄다 외자 이름을 써 왔고, 그 한 글자를 택할 때도 일상생활에 잘 사용하지 않는 글자를 엄선했다. [[태종(조선)|태종 이방원]]은 이름에 흔한 한자인 '꽃다울 방(芳)'과 '멀 원(遠)'을 썼지만 피휘를 신경쓰지 않았다.[* 공자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름이 두 글자일 때는 두 글자 한꺼번에 쓰지만 않는다면 괜찮다고 하였으나 그건 원칙상 그렇다는 것일 뿐이고 문제 삼고자 한다면 충분히 문제 삼을 수 있었다. 관세음보살이 관음보살이 된 것도 [[당나라|당]] [[태종(당)|태종 이세민]]의 이름과 겹쳤기 때문이었고, [[조선]] [[숙종(조선)|숙종]] 대에는 [[조선 통신사]]가 일본에 보낸 국서에 光 자가 들어간 것을 두고 [[에도막부|일본 조정]] 측에서 [[에도막부]]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徳川家光)의 미쓰(光)와 같다며 조선 정부에 정정을 요구한 적도 있었다.(물론 조선 정부는 이런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조]]는 이름에 비교적 흔한 글자인 금(昑)이 들어갔기 때문에 자신의 본명을 무려 40년 동안이나 숨겼다고 한다. 자기 이름이 금(昑)이라고 하는데, 임금의 휘를 알게 된 신하가 글을 낭독하다가 금(昑)자가 나와 [[피휘]] 문제로 글을 계속 읽지를 못하자 [[영조]]는 그 사실을 알고 그냥 읽으라 직접 하교하기도 하였다고 한다.[[http://m.khan.co.kr/view.html?artid=201310081114281&code=960201|##]] 다만 조선 초기 임금([[태조(조선)|이성계]], [[정종(조선)|이방과]], [[태종(조선)|이방원]])들은 [[고려|고려 말기]] 때 태어난 사람으로 이름을 지을 때는 왕이 될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외자일 이유가 없었다. [[철종(조선)|철종]] 또한 그의 할아버지인 [[은언군]][* [[사도세자]]의 서자, 정조의 바로 밑 이복동생.]이 [[천주교|천주학]]에 엮이고 역모로 몰려 서인(평민)으로 강등된 후 태어났기 때문에 아버지 대부터는 군호조차 받지 못한, [[조선/왕사|왕위]]와는 거리가 매우 먼 상태였는지라 이름이 외자일 필요가 없었다. [[고종(대한제국)|고종]]은 아예 상태가 더 안 좋아, 전임인 철종과 '''무려 17촌'''이나 차이가 나는, [[인조]]로부터 갈라져 나온 남과 다를 바 없는 상태였다. 즉 태어날 때부터 '''[[조선/왕사|임금]]'''이 될 것임을 알면서도 굳이 두 글자 이름을 지어 가진 사람은 단종이 유일하다. 다만 예전에는 태어날 때 짓는 이름과 족보에 올리는 이름이 달랐는데, 단종의 경우 태어날 때의 이름을 왕이 된 뒤 미처 바꾸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아마 정국이 불안정하여 이름을 미처 바꾸지 못한 상태에서 바로 양위해 개명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보지도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