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당계전쟁 (문단 편집) === 토벌령 발표 === 10월 20일, 난징에서 긴급회의가 소집되었다. 장계와 [[쑨커]]가 탕성즈가 야심을 버리지 못하고 난징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각 방면과 합작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하며 무력 토벌을 주장했다. 이에 [[리쭝런]], [[리례쥔]]도 출사를 청했고 회의는 만장일치로 탕성즈 토벌을 결의, 당일 저녁에 국민정부의 명의로 탕성즈 토벌령과 탕성즈의 모든 본직과 겸직을 박탈한다는 명령을 발표했다. 또한 특별위원회는 탕성즈와 그 배후의 왕징웨이를 견제하기 위해 장제스의 복귀가 필요하다는 것에 합의, 장제스 복직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토벌령이 발표되자 탕성즈는 왕징웨이와 회합하여 대책을 강구했다. 회의 결과 탕성즈가 군사적으로 대응하는 한편, 왕징웨이가 반 특위 세력과 연대를 위해 우한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왕징웨이가 우한을 떠난 것은 탕성즈를 돕기 위한 것이 아니라 탕성즈를 옹호했다는 오명을 뒤집어 쓰기 전에 어차피 패배할 것이 분명해보이는 탕성즈를 버리기로 한 것이었다. 이미 왕징웨이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합작을 선택한 탕성즈가 도움은 커녕 깽판만 치면서 훼방 놓는 현실에 질색하고 있었고 그를 제어할 자신도 없는 상황이었다. 바로 다음날인 10월 21일, 왕징웨이는 서둘러 우한을 떠났다. 탕성즈는 국민정부의 토벌령에 맞서 통전을 발표하여 난징의 특별위원회의 합법성을 부인했으나 [[주페이더]], [[리지선]], [[펑위샹]] 등이 호응하여 하남, 광동, 강서에서 양호 지역으로 진격하기 시작했고 10월 24일 특별위원회는 탕성즈의 당적을 박탈하고 당내의 모든 직위에서 해직했다. 이날, 상하이에 도착했던 왕징웨이는 자신을 보호해준 탕성즈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의 의미로 난징의 서정을 반대한다는 통전을 발표하고 장제스에게 속히 귀국해 당국의 현안을 논하자는 전보를 보낸 후 [[장왕합작]]을 추진하는 리지선의 기반인 광저우로 떠났다. 이는 [[장파쿠이]]와 리지선이 왕징웨이에게 광저우에 새로운 중앙당부를 설립하는 일에 대해 논하자는 초청에 응한 것이었다.[* 장제스는 이 소식을 일본에서 듣고 11월 1일 "앞으로 당과 나라의 혼란이 더욱 악화될 것이다."라는 짧은 소감을 남겼다.] 왕징웨이를 따라 [[구멍위]], [[허샹닝]], 진수인, [[간나이광]], 왕락평 등도 뒤따랐다. 광저우에 도착한 왕징웨이는 자신이 광저우에 온 것은 우한과 난징의 합작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발표했으나 당계전쟁에 대해서 어디까지나 대인관계에 불과하다면서 더 이상 탕성즈의 편을 들지 않겠다고 입장을 발표했다. 이 소식을 들은 탕성즈는 왕징웨이는 그저 자신의 군사력만을 이용하려 했던 것 뿐이라면서 극심한 배신감을 토로했다. >"왕징웨이는 단지 내가 장악한 무력을 이용하여 그의 후순(後循)으로 삼고자 했을 뿐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