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당국강 (문단 편집) === 출생과 배우활동 === 산동성 칭다오에서 태어났다. 문화대혁명기에 고교를 졸업하고 칭다오시극단에 입단해서 연극 커리어를 시작한다. 1975년에는 군영화제작소인 81영화제작소에 입사해서 영화배우-탤런트로 데뷔한다. 이 때부터 드라마를 찍기 시작했다. 본인의 연기력도 좋았던데다가 장인이 인민해방군의 고위 정치장교였기 때문에 장인덕도 보면서 서서히 주연급으로 발돋움한다. 젊었을 때는 [[강하늘]]과 상당히 닮았다. [[http://www.askququ.com/uploads/allimg/200515/1_200515215942_5.jpg|#]] 1989년 이혼을 했고, 1990년 전부인이 자살을 했는데, 당국강이 바람을 피워서다 혹은 정신병을 앓아서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정확히는 밝혀지지 않았다. 일단 장인이 군예술부대를 담당하는 고위 정치장교였고, 장인의 명령으로 당시 소속사였던 81스튜디오 [* 군 소속 스튜디오다. 말하자면 당국강은 [[군무원]] 신분이었다. ] 에서 이 사건을 철저히 조사했지만, 별 혐의가 없다고 판단되어 징계를 받지 않고 계속 연예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1980년대 초반부터 주연급이었지만, 한국에서는 1994년 [[삼국연의(1994)]]의 [[제갈량]]역을 맡으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옹정왕조에서 옹정제를 맡았다. [[파일:유비와 제갈양.gif]] 당국강의 [[제갈량]] 연기. 원래 1970년대 이래 마오쩌둥역은 고월(1937-2005)이 전담배우였으나[* 원래 인민해방군 병사였으나, 마오쩌둥이 젊었을 때부터 오래 보좌한 심복 [[예젠잉]] 원수가 그를 우연히 보고, "자네 모주석 젊었을 때와 정말 닮았군."이라고 알아보고 마오쩌둥 전담 배우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고월은 죽을 때까지 인민해방군 문선대 소속 현역군인이었으며, 오직 마오쩌둥 전담배역을 전담하여 군 소장까지 출세하였다.][* 얼굴 자체는 고월이 좀 더 닮았다. 특히 눈 부분.], 90년대 들어 고월이 노쇠화되어서 젊은 마오쩌둥 역을 맡기 힘들자 1999년에 <개국영수모택동>을 시작으로 마오쩌둥 전담배우가 되었다. 그리하여 거의 2-3년마다 한번씩 마오쩌둥 역할을 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옹정제]], [[홍타이지]], [[곽자흥]], [[영락제]] 등의 역을 맡아 사극에도 많이 출연했으나, 2010년대 들어서서는 모택동역만 맡고 있다. [[파일:tangguoqiang2.png]] 2012년 한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후에 감격에 북받혀[* 전 버전에서는 한류를 비판하는 소감을 말하면서 격한 제스처를 취했다는 설이 있었는데 사실이 아니다.] 격한 제스처를 취했는데, 같은 후보의 [[진도명]]이 냉담한 표정을 한 채 서 있었던 바람에 중국에서 유명한 밈이 되었다. 이 사람들이 각자 맡았었던 [[천계제]], 옹정제, 제갈량, [[한고제]], 마오쩌둥 등으로 패러디되었다. 이것은 매우 유명한 밈이며, [[바이두 백과]]에서도 [[https://baike.baidu.com/item/%E9%99%88%E9%81%93%E6%98%8E%E5%86%B7%E7%9C%BC%E5%9B%BE/883675|항목]]으로 개설되었을 정도로 [[필수요소]]가 되었다. 서예에 일가견이 있으며, 가끔 개인전을 열 정도의 프로급 솜씨를 자랑한다. [[삼국연의]]에서 출사표를 적어내려가는 제갈량의 모습은 실제로 당국강의 글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