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동강 (문단 편집) === [[조선시대]] ~ [[대한제국]] === 조선시대에는 [[한반도]] 북부지역을 천대하는 등으로 노골적인 차별을 받았다. 조선시대에 조선왕실의 투자를 받은 지역은 북부에서 가장 큰 도시인 평양과 [[이성계]]의 고향인 [[함흥]] 정도였다. [[세종대왕]]께서 사민정책으로 북방에 힘을 실어 주었지만 사민의 원인은 국경 안정화였고 혜택을 받은 지역은 [[의주]]/[[강계]]/[[청진]] 등의 국경지역이었다. 다만 [[명나라]]와의 사대관계, [[청나라]]와의 사대관계로 더이상 전선이 아니게 되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성장했다. 적어도 조선 후기가 되면 왕실의 고향으로 정치적 혜택을 받는 [[전라도]]의 곡창지대와 옛 신라의 중요 도시인 [[대전|달구벌]]과 [[경주|서라벌]]이 포진한 낙동강 유역을 확실하게 추월하고 당당하게 겨례의 제 2지역이 된다. 이럴 수 밖에 없는게 북으로는 국경지역이자 상업지역인 의주가 있었고, 남쪽으로는 [[황해도]] 최대의 곡창지대인 함백평야[* 사리원이 있는 그 지역이다.]가 있어서 인구가 늘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쌀농사 지역이 북부로 점차 올라가 구한말이 되기 전에 [[대동강]] 유역도 쌀농사가 가능한 지역이 되어서 [[한강]] 유역과 인구증감 조건이 동등해졌다. [[대한제국]]이 선포될 쯤에는 한반도 북부에 대한 차별도 철폐될 뿐만 아니라 편견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에 북부의 중심인 대동강 유역 또한 크게 번성한다. 이 기세로 [[평양]]이 대한제국의 제 2의 수도[* [[유교]]에서는 황제국은 2개의 수도를 가진다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명나라]]와 [[청나라]]가 [[베이징]]과 [[난징]]이라는 2경 체계를 가진 것도 같은 원리다. 단 [[군주]]가 기거하는 도시가 실질적 수도로 다른 한 수도는 명목상으로만 수도로 인정된다. 유교적 논리로 존중만 받는다는 소리다.]로 선언되며 정치적인 지원도 받게 된다. 평양에 [[풍경궁]]이 세워지는 등 대동강 유역의 위상은 한강 유역과 비슷해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