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동아공영권 (문단 편집) == 개요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대동아공영권.png|width=100%]]}}} || || ▲'''1940년대 일본 제국의 최대 판도'''[* [[일제강점기|조선]]과 [[대만일치시기|대만]]은 외지(外地: 식민지)로서 괴뢰국이나 점령지와 달리 일본 제국의 영토에 속했기 때문에([[한일합병]]) 붉은색으로 되어 있다. 또한 태국은 일본에 부역한 것이기 때문에 점령지라 볼 수 없었다.][* 위 지도에 나타난 것보다 [[양쯔강]]과 [[산시성(산서성)|산시성]] 쪽의 중국 내륙으로 더 진출했었다.][* 지도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전쟁 전부터 [[남양군도]]를 영유하고 있었고 [[알래스카]]의 [[알류샨 열도]]의 일부 섬들도 점령했었다.][br]{{{-2 {{{#ee1616 ■}}} 본토 | {{{#e65e5e ■}}} 괴뢰국 및 점령지 | {{{#b90606 ■}}} 동맹국}}}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anchukuo011.jpg|width=100%]]}}} || || 일화만협조 천하태평(日華滿協助 天下太平) 프로파간다 포스터[br][[일본 제국|일본]](日), [[중화민국|중화]](華), [[만주국|만주]](滿)가 화합하여 서로 도우면 온 땅이 크게 평안해진다.[* 왼쪽부터 만주, 일본, 중화를 나타낸 선전 포스터이다. 조선, 대만이 없는 이유는 이미 한일합병으로 일본제국이 되었기 때문. 자세한 내용은 [[내선일체]] 참조][* 오른쪽 중국인이 [[청천백일만지홍기]] 대신 북양정부 시절의 오색기를 들고 있는데, 이는 [[왕징웨이 정권]] 이전까지 일본 점령하의 중국 지역에서 청천백일만지홍기의 사용이 사실상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왕징웨이]]가 괴뢰 정부를 맡은 이후에 그들의 국기로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마저도 깃발 위쪽의 노란색 삼각형을 붙여서 게양해야 했다.] || 대동아공영권([ruby(大,ruby=ダイ)][ruby(東,ruby=トウ)][ruby(亞,ruby=ア)][ruby(共,ruby=キョウ)][ruby(榮,ruby=エイ)][ruby(圈,ruby=ケン)][* [[정체자|구자체]]와 [[역사적 가나 표기법]]에 따른 표기 방식이다. [[신자체]]와 현대 가나 표기법으로는 [ruby(大,ruby=だい)][ruby(東,ruby=とう)][ruby(亜,ruby=あ)][ruby(共,ruby=きょう)][ruby(栄,ruby=えい)][ruby(圏,ruby=けん)].] / Greater East Asia Co-Prosperity Sphere)은 '''[[동아시아|대동아]]'''의 사람들이 '''공'''동으로 번'''영'''하는 '''권'''역이라는 뜻으로, [[일본 제국]]의 영토 확장 정책이자 [[프로파간다]] 구호이다. '아시아 민족이 서양 세력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되려면 일본을 중심으로 대동아공영권을 결성하여 서양 세력을 몰아내야 한다'며 1940년 8월 1일 마쓰오카 요스케(松岡洋右) 외상의 담화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이다. 메이지 유신부터 시작한 일본 제국의 근대 사상의 [[헤게모니]]는 [[아시아주의]]로 시작하여 대동아공영권으로 종결되었다. 자원 부족과 경제 제재에 시달리던 일본 제국이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고 더 거대한 블록 경제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시작한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으로 대동아공영권이 사용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