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동아공영권 (문단 편집) == [[제국주의]] == "대동아공영권"이라는 말은 1940년 7월, 일본이 국책요강으로 '대동아 신질서 건설'을 내세우면서 처음 나왔다.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직후인 1941년 12월 10일에는 이 전쟁을 "대동아 전쟁"으로 부르기로 결정했고, 같은 달 12일에는 전쟁 목적이 '대동아 신질서 건설'에 있다고 주장했다. [[제국주의]] 시대의 일반적인 식민 통치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대표적으로 [[영국]]이 [[인도 제국|인도를 식민지로 삼았던 시기]]에 현지의 지배 계층 및 지식인들을 적극적으로 영국에 유학 시켜주면서 정신적으로 회유하던 것과도 비슷하다. 하지만 이 대동아공영권은 실제 여타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 통치 정책과 그 정의가 조금 다르다.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 통치 정책이 더욱 원활한 식민 통치에 목적을 둔다면, 대동아공영권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식민지들의 독립이 점차 늘어나자 일본이 식민지의 통치권을 지키려고 주장한 개념이다. 실제로 이런 식민 정책은 유화적인 식민 통치 정책의 일환으로서, 식민지의 탄압을 줄여나가면서 하는 통치권의 유지가 매우 핵심적인 전략이었다. 하지만 정작 일본은 이 당시 겉으로는 유화 정책을 펴면서 뒤로는 물자 수탈 및 [[독립운동가]] 탄압이라는 통치 기조를 유지했다. 이 개념이 등장하기 바로 직전에 일본은 비슷하게 식민지인과 [[일본인]]의 단합을 호소하기 위한 비슷한 개념 또는 표어를 주창했는데, [[1930년대]] 설립된 [[협화회]]를 비롯한 관제 단체들에서 주창한 '''[[오족협화|오족협화(五族協和)]]'''라는 통치 이념도 비슷하다. 이 표어는 중화민국에서 주창한 [[오족공화]](五族共和)의 일제 버전으로 [[일본인]]과 [[만주족|만주인]], [[몽골인]], [[중국인]], [[조선인]] 다섯 민족이 힘을 모아 왕도낙토라는 [[지상락원]]을 세우자는 것이었다. 이 말을 실제로 철석같이 믿은 사람이 바로 [[이시와라 간지]]다. 이 양반은 오족협화를 이룩하기 위해 [[만주]]에 "오족협화의 지상낙원"을 만들고자 [[만주사변]]을 일으켰다. 그리고 나온 나라가 바로 [[만주국]]이다. 하지만 대동아공영권이든 오족협화든 이러한 식민 지배 이념들은 큰 파급효과가 없었다. 특히 [[일제강점기]]를 겪던 조선과 [[난징 대학살]] 등 일제의 전쟁범죄를 겪던 중국으로 대표되는 주변국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구호들이 사기와 기만일 뿐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