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륙타통작전 (문단 편집) == 중화민국의 대응 == [[일본군]]이 엄청난 숫자의 병력과 무기를 집결시키고 있다는 첩보는 당연히 [[국민혁명군|중국군]]에도 전달되었다. [[장제스]]는 일본의 공세 위험에 대해서 [[프랭클린 D. 루스벨트|루스벨트]]에게 '중국이 일본의 공격에 완전히 노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1944년 2월 난웨에서 열린 4차 군사회의에선 일본의 선제공격이 예상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중국]]에 파견되어 있던 [[조지프 스틸웰|스틸웰]] 이하 [[미군]] [[참모]]들은 일본군은 이미 약화되어 공세를 할 리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들의 주장을 수용한 루스벨트는 장제스가 가진 유일한 전략예비대인 윈난 성의 Y군을 스틸웰의 버마 탈환 작전에 동원하기 위해 [[버마]]로 보내라고 요구했다. 장제스는 당연히 이를 거부하며 만약 Y군을 움직이고 싶거든 버마에 미군을 상륙시켜 카이로 회담의 합의를 이행할 것을 요구했다. 스틸웰로부터 일본군의 위험성에 대한 과소평가된 보고를 받은 루스벨트는 장제스가 엄살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결국 루스벨트는 만약 Y군을 보내지 않으면 원조를 중단하겠다고 압박했고 장제스는 미국의 요구에 굴복하여 Y군을 버마에 파병했다. 설상가상으로 셔놀트 장군이 지휘하던 중미연합공군도 버마로 이동하면서 중국은 사상 최대 규모의 공세를 맞이했음에도 최정예 병력을 다른 전선에 보내버리게 된 황당한 상황을 맞이해야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