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만단결연맹 (문단 편집) == 상세 == 대만 독립을 주장하던 [[중국 국민당]] 소속 [[대만 총통|중화민국 총통]] [[리덩후이]]가 이와 관련한 문제로 국민당에서 [[제명]]되자, 리덩후이를 지지하는 국민당 소속 본토파(本土派)[* [[본성인]]들이 주축으로 있는 계파로, 국민당 내 본토파 좌장으로 불리는 인물이 [[왕진핑]] 전 입법원장이다. [[한궈위]]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국민당 내에서 많이 위축된 상태다. 이들 중 대다수는 [[화독]], 매우 극단적인 경우는 [[대독]]을 주장하고 있다.] [[국회의원]] 및 당원들이 일부 탈당하여 리덩후이와 같이 세운 정당이다. 따라서 정신적 지주는 리덩후이.[* 리덩후이는 지지선언만 했을 뿐 입당은 하지 않았다. 그는 전직 총통이라는 부담감 때문에 [[정치]]를 대놓고 하지 않겠다면서 [[중국 국민당]]에서 제명된 뒤 쭉 [[무소속]]으로 있었고, 사망할 때까지 어느 정당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원래는 [[리덩후이]]의 영향을 받아 성향이 중국 국민당과 비슷한 [[보수주의]] 쪽이었다가, 황쿤후이 당 대표가 들어서면서 어느 정도 [[진보주의]]라든가 복지 중심주의를 내놓기도 했다. 한때는 노동운동 세력과 연계하며 상당히 좌경화되었으나 2021년 들어 다시 보수 성향으로 돌아갔다. 차이잉원 총통의 근로시간 단축 정책과 사형 폐지를 반대하고 있다. 2005년 4월 4일, 쑤진창(蘇進强)[* 2001년까지는 국민당 소속이었다가 리덩후이를 따라 이 당에 입당하였다.] 주석 등 10명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대만 사회에서 논란이 되었다. 다만 한국과 중국처럼 야스쿠니에 대한 반발 여론이 그리 강하진 않아 묻혔다. 원래는 [[입법원|중화민국 입법원]]에 의석이 있는 중견 규모의 [[정당]]이었지만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국회의원]] 의석은 하나도 없고[* 이는 선거구제를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 개편한 영향이다.] [[지방의원]] 의석도 5개밖에 없는 초미니 [[정당]]으로 떨어진 상태. 그래도 [[2012년]] [[대만 입법위원 선거]]에서 의석 셋을 다시 얻으면서 원내로 진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6년 총통 선거와 입법원 선거를 앞두고 민진당과 연합했는데 정작 지역구 선거에서 죄다 광탈하면서 다시 원외정당으로 전락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