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방군 (문단 편집) === 멸망(폐현) === 그러나 중원이 점차 혼란기에 접어들면서 한반도에 개입할 여력이 사라졌고, 특히 311년 고구려의 제15대 [[미천왕]]이 이들과 중원 왕조 간의 연결 고리였던 서안평을 접수해 낙랑군과 대방군을 [[월경지]]로 고립시키면서 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끝내 314년 미천왕에 의해 점령당하면서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낙랑군, 대방군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오던 한성백제는 낙랑인과 대방인을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대량으로 흘러들어온 신진 문물을 바탕으로 백제의 문화가 크게 발달하게 되었다. 훗날 백제가 일본으로 문화를 전파할 기틀을 이때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들이 한반도 역사에 끼친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이후 [[모용선비]]족의 [[전연]]에 의해 대방군이 [[요서]]의 대릉하 유역에 교치되기도 했으나 남북조시대인 430년대 [[북위]]가 폐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