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백색함대 (문단 편집) == 의의 == [[미국]]은 대백색함대를 통해 미국의 국력을 전세계에 과시할 수 있었다. 특히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 제국]]을 경계하던 서부의 미국인들은 대백색함대를 보면서 자긍심을 높일 수 있었고, 중남미 지역에서도 환영을 받았다. 당시 대백색함대를 본 [[오스트레일리아]] 역시 대백색함대에 자극을 받고, 별도의 예산을 투자해 자국의 해군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한편 당시 영국의 안보 우산이 사라질까 우려하던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는 대백색함대의 기항을 계기로 미국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다. 일본에서는 미국의 이민 제한, [[샌프란시스코]] 시의 일본인 차별 등의 문제로 인해 당시 대미개전을 외치던 여론이 있었지만, 대백색함대의 입항을 계기로 여론이 쏙 들어갔다. 일본은 [[연합함대]]를 편성해 대백색함대와 나란히 [[요코하마]] 항에 입항하는 행사를 치뤘고, 반 년 동안 예행연습을 치룬 어린이 5만 명이 성조기를 흔들며 미국 국가를 부르고 [[메이지 천황]]이 대백색함대의 장교들을 초청해 오찬을 베푸는 등 극진한 대우를 했다. 또한 [[미해군]] 함정들이 입항할 때 새로운 시대의 미국이 주도할 해군력을 제대로 과시했는데 이 때의 일본은 러일전쟁 [[쓰시마 해전]]의 압승으로 인하여 해군력의 자부심이 강했으나 미해군 대백색함대의 위용의 충격을 받아([[쿠로후네 사건]]과 비교하여 일본에서는 백선 내항 사건이라고 한다.) 일본제국이 미국을 라이벌로 생각하며 해군 증강에 노력하게 되는 계기로 이어진다. 반면에 중국은 대백색함대에게 불만을 가졌다. 다름아닌 함대의 절반 만이 [[샤먼시|샤먼]]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한편 대백색함대는 [[미합중국]] 해군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대백색함대의 항해를 계기로 [[진주만]]이 미국 해군의 석탄 보급 기지로 각광받게 되었고, 향후 전함 건조에 있어서도 여러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었다. 특히 함선의 규격이 너무 제각각이라는 지적에 따라 [[표준형 전함]]의 건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해군의 훈련도 역시 높일 수 있었고 대백색함대의 항해를 통해 해군력 확대가 의회의 지지를 받으면서 미국 해군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퇴임 당시 해군 강국이던 [[영국]]과 [[독일]]에 버금가는 규모의 거대한 함대를 보유할 수 있었다. 후일 [[2차세계대전]]에서 맹활약하는 [[체스터 니미츠]], [[레이몬드 스프루언스]]는 초급장교로 대백색함대에 속해 일본을 방문 했었는데 이 때 당시 러일전쟁 [[쓰시마 해전]]의 주역이자 일본제국 해군의 영웅 [[도고 헤이하치로]]를 축하연에서 만났던 경험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