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성동(파주) (문단 편집) === 교통 === 대성동으로 가는데만 관문이 3개가 있고, 처음 들어가는 데도 '평화의 다리'라는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 평화의 다리에는 [[바리케이트]]가 쫙 깔려있고 중간에 육군 초소가 있다. 평화의 다리에 처음 들어갈 때도 육군 [[군사경찰]]이 차를 멈추게 하고 [[신분증]] 검사를 한다.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에는 '평화의 마을 대성동'이라는 큰 표지판이 있다.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이름은 '평화의 마을'인데 군사경찰에 바리케이트로 통제되어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라는 의견도 있다. 물론 마을 안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이곳을 방문할 때 반드시 파란색 [[손수건]]을 창문으로 펄럭이게 해야 하는데, 달지 않고 무단으로 들어갔다가는 총에 맞아도 뭐라 하지 못하는 지역이다. 사실 저 파란색 손수건은 [[비무장지대|DMZ]] 출입 차량이라면 해놓아야 되는 건데, 원칙적으로 [[파란색]](남색)은 대한민국 국군 계통, [[하얀색]]은 UN군사령부, [[빨간색]]과 [[노란색]]은 북중 공산군이 써먹는다. 그리고 [[중립국감독위원회|중립국감시위원회]]는 저 4색이 들어간 깃발을 달아놓으며, 이 깃발은 중립국감시위원회의 마크이기도 하다. [[개성공단]]으로 넘어가는 차들을 보면 빨간색 깃발을 단 한국 번호판을 단 [[트럭]]들이 보이기도 한다. 마을로 들어오면 유엔군에 자신이 방문했다는 것을 신고해야 한다. 방문자가 있을 경우 군인들이 집에 찾아와서 방문자를 확인한다. 다만 외부인이 이 마을을 출입하려면 일주일 전에 신청을 한 후 신원 확인을 거쳐야 가능하다. 주민이 아닌 경우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만 출입이 가능하다. 다만 사람이 죽으면 외부 조문객이 들어와야 하는데, 규칙대로라면 [[장례식]]이 다 끝난 후에나 조문할 수 있지만 예외는 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2011년]]에 1박 2일간 머무른 적이 있다.] 현지 주민의 경우 매일 19시가 되면 [[육군]] [[민정경찰]]이 가구별 인원을 [[점호|점검]]하고 0시부터 5시까지는 [[야간통행금지|통행이 금지된다]]. 이 통행금지를 어기면 1차 위반 시 경고, 2차 위반시에는 7일 추방, 5차 위반이면 주민권이 박탈된다. 다만 밤중에 병이 나거나 돌발적인 사태가 일어나 나가야 할 일도 있고, 돌아와야 할 일도 있으므로 그럴 때는 부대와 연락하고 오간다. [[6.25 전쟁]] 전에는 이 마을 사람들은 물건을 살 때 개성장에 갔다. 걸어서 '''9km'''만 가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면서 개성장에 가는 길이 막혔고, 그 다음부터는 고립된 생활을 해야 했다.[* 실제로 대성동 마을을 포함한 경기 [[장단군]] 일대는 분단 전만 하더라도 [[개성시|개성]]의 영향력이 매우 큰 지역이고, 이 일대 사람들 역시 개성에 대한 연고 의식이 강했다. 분단, 아니 휴전선이 개성과 대성동 사이로 그이지만 않았다면 이 지역 주민들은 개성 사람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다.] 휴전 이후에는 '민사표'라고 해서 [[미군]]들이 군용 트럭으로 1주일에 1번 문산으로 사람들을 실어다 주었다. 생활용품을 사려면 문산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농산물 역시 이 미군 군용 트럭을 통해 판매하였다. 하지만 돌아오는 차는 마련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한 번 나간 사람은 1주일간 문산 밖에서 살아야 했다. 그래서 문산에 지낼 친척집이 없는 사람은 마을 밖으로 나가는 것이 힘들었다. 여관비를 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장을 자주 보러 나갈 수 없었다. 교통이 불편해 유엔군 트럭이 일주일에 한 번씩 마을에 들어와 생필품을 나눠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군용 트럭에는 문이 없었기 때문에 흙길을 지나다 보면 옷이 흩날리는 흙먼지로 더러워지기 일쑤였다. [[결혼식]]에 가는 사람들은 담요를 덮고 가거나 아예 보자기에 옷을 싸가지고 가서 결혼식장 근처에서 갈아입기도 했다. 이 군용 트럭의 운행은 나중에는 1주일 2번으로 늘었다. 미니버스를 도입한 적이 있었으나 운영 적자로 금세 중단되었다. 이후 [[1972년]] 마을버스를 기증해 버스 운행이 일주일에 세 번으로 늘었다. [[1970년대]] 말부터 버스가 매일 한 번씩 다니다가 횟수가 늘어 지금은 하루 3번 문산터미널까지 왕복한다(오전 6시, 정오, 오후 6시). [[문산읍(파주)|문산읍]]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신일여객(파주)|신일여객]][* [[1970년]]부터 운행한 노선으로, 원래 서부여객 소속이었다가 [[2003년]] [[신성여객(파주)|파주신성교통]]으로, [[2016년]] 신성여객 경영난 사태로 신일여객에게 넘겼다.] [[파주 버스 93|93번 따복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 마을로 들어가려면 패스라는 출입증이 필요하고 군부대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백연리에 있는 통일촌과 진동면에 위치한 해마루촌 역시 마찬가지. 노인 주민들은 거동이 불편하기 때문에 버스 운전 기사가 혈압약 등 주기적으로 받아야 하는 약을 전달해주기도 한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자가용이 늘어났다.''' 그래서 현재 집집마다 1대 이상 자가용을 보유하고 있고 마을 출입 역시 개인 자가용을 이용한다. [[http://www.dmz.go.kr/korean/doshare/freetalk/down/349|대성동 주민들의 의식주 생활]] 군사 지역이라 차량 [[내비게이션]]도 여기에서는 먹통이 된다.[* 물론 오픈 소스를 기반으로 한 [[오픈스트리트맵]]은 길찾기가 지원되며 내비게이션 사용도 가능하다.] 같은 이유로 [[네이버 지도]]나 [[카카오맵|다음 지도]]에서도 이 마을은 [[로드뷰]]를 제공하지 않는다. [[구글]] [[스트리트뷰]]에서 [[대성동초등학교]]와 인근 지역을 볼 수는 있지만, 대성동을 위성 사진만 보고 알아서 찾아야 한다. 잘못 찾아서 [[도라산역]] 쪽만 보고 있으면 못 찾는다.[* '조산리' 쪽을 보면 된다. 여담으로 구글 스트리트뷰는 [[북한]]도 볼 수 있다.] 철도교통으로는 [[장단역]]이 있었으나 6.25 전쟁으로 인해 [[폐역]]이 되어 현재는 운행되지 않는다. 때문에 철도교통을 이용하려면 어쩔 수 없이 [[임진강역]]으로 이동해서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경의중앙선 전철]]을 타야 한다.[* 그러나 이 임진강역도 하루에 평일 2회, 주말과 공휴일에는 4회 밖에 운행을 안하고, 이것마저도 [[문산역]]까지만 운행되는 셔틀이기 때문에 이용하기 매우 불편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