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송중수광운 (문단 편집) == 개요 == {{{+1 大宋重修廣韻}}} 흔히 줄여서 광운(廣韻)이라고 부른다. [[송나라]] 대중상부 원년(1008) 진팽년(陳彭年) 등이 [[송진종|북송 진종]]의 명을 받아 만든 [[운서]]이다. 전체적으로 [[절운]](切韻)의 증보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음계 분류는 대체로 절운을 따랐으나 수록된 자수가 대폭 늘어났고 각각의 글자에 대한 설명이 추가·개정하였다. 운목은 절운과 비교하여 眞운 중 개음 [u]가 존재하는 글자를 諄운으로 분리하고, 寒운 중 개운 [u]가 존재하는 글자를 桓운으로 분리하고, 歌운 중 개음 [u]가 존재하는 글자를 戈운으로 분리하고 嚴운의 상성과 거성 儼운과 釅운을 추가해서 열세 가지 운이 늘어나 총 206운, 수록된 글자는 2만 6194자이다. 사용된 성모는 학설에 따라 다르지만 37성모설부터 51성모설까지 있다.[* 가장 적은 37성모설은 현재의 [[경순음]]이 존재하지 않는 대신 후치경음(만기 중고음에서는 권설파찰음) 정치음 莊조(莊母, 初母, 崇母, 生母)(俟母의 경우 당대에 이미 분화가 되었다는 설이 있고 좀 더 후대에 분화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37성모설은 후자. 38성모설은 전자)가 존재했다는 설이고, 송대에 이미 [[경순음]]이 의미분별에 영향을 주었다는 41성모설, 影모 등 후음에 2가지가 있었다는 51성모설 등이 있다. 다만 광운에서는 37성모설이 일반적이고 집운에서는 51성모설이 주류이다.] 광운이 후대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중고음이 가장 잘 보존된 운서가 절운인데, 이 책의 원본은 산실되어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따라서 광운은 오랜 세월 동안 완정된 절운계 운서 중에서는 그나마 절운에 가까운 운서로 통하였다.[* 절운의 [[당나라]] 때 판본인 간류보결절운(刊謬補缺切韻)은 20세기가 되어서야 발견되었다.] 또한 후대의 수많은 운서들의 기반이 광운이었기 때문에 [[중고음]] 연구에 있어서는 기본이 되는 서적이다. [[한국 한자음]]도 이 광운의 축약본인 운략(韻略)을 재정리한 [[예부운략]]에 많이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한국 한자음]] 연구에 있어서도 빠질 수가 없는 서적이다. 이 때문에 [[한국 한자음]]을 연구하는 데도 기본자료가 된다.[* 한국 한자음에 큰 영향을 준 운서로 예부운략, 배자 예부운략, 홍무정운, 삼운통고(예부운략의 축약본) 등이 있는데 이 운서들을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광운이 나온다.] 다만 편찬된 시기가 [[송나라]]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기반이 된 반절은 절운계 반절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현실 한자음과는 괴리가 있었다. 때문에 광운 이후로는 절운계 운서는 예부운략을 끝으로 더이상 나오지 않았고, 31년이 지나 1039년에는 현실 한자음을 반영한 [[집운]]이 편찬되었다. 워낙에 영향력이 큰 운서였기에 송본광운 등 여러 판본이 존재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