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야성 (문단 편집) == 역사 == 본래 [[대가야]]의 영역으로 이미 그 당대에부터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되어 왔으나, 장군 [[이사부]]에 의해 함락된 뒤로는 대가야의 중심이던 고령 대신[* 신라는 백제를 멸망시킨 뒤에도 옛 백제 지역의 행정 중심지를 수도였던 [[부여군]] 대신, 백제 당시에는 위상이 상대적으로 떨어져 있던 [[공주시]]로 옮겼다. 당연히 원래 수도를 계속 중심도시로 쓰면 유민들이 결집해 저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이 신라의 옛 가야 지방에 대한 지배 거점이자 대 [[백제]]전선의 주요한 방어거점으로 활용되었다. 지리적 요충지다보니 시대를 막론하고 수 많은 전투가 일어났다. [[대야성 전투]] 문서 참조. [[선덕여왕]] 시대에는 642년 [[백제]] 장군 [[윤충]]이 [[대야성 전투(642년)|함락하여]] [[태종 무열왕|김춘추]]의 딸과 사위인 김품석의 목숨을 빼앗으면서 [[신라]]와 [[당나라]]가 연합해 [[백제]]를 멸망시킨 사건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김춘추의 사위이자 성주인 [[김품석]]의 부하 모척과 검일의 배반이 결정타였다. 근데, 김품석 이 작자 또한 잘한 건 없었는데 그놈의 [[색욕]] 때문에 모척과 검일의 부인을 빼앗은 탓에 배반의 단초를 제공하였기 때문. 그리고 검일은 훗날 사비성이 함락되었을 때 결국 신라군에 붙잡혀 처형당했다. 이 때문에 대야성의 방어기능을 좀 더 경주에 가까운 지금의 [[경산시]]인 압독주로 옮겼다. 이후 대야성은 백제군이 수비하고 있다가, 김유신 열전에 의하면 648년 김유신이 대야성 앞에서 백제군과 한 번 대치한 후, 김유신이 중과부적으로 퇴각하는 척 하며 백제군을 옥문곡 계곡까지 유인해 승리를 거뒀는데 이 때 신라군이 대야성을 탈환했다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지만 확실하진 않다. 아무튼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20여년 동안은 대야성 대신 압독주가 백제 방면 수비의 거점도시였다. 아무리 늦어도 660년 백제가 멸망하면서 대야성을 신라군이 다시 수복한 것으로 보이며, 이후 661년에 주의 중심지를 다시 대야성으로 옮겼다. 그러나 합천 대야성은 방어에 유리한 지역이라 중시되었던 건데 백제가 사라지면서 필요성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685년 지금의 [[진주시]]로 주치를 옮기고 주 이름도 강주가 된다. 이후로도 합천은 지역거점도시 역할을 잃어버렸고 진주는 [[경상남도청]], 도청 서부청사 등이 자리하며 21세기 현대까지 쭉 서부 경남 지역의 중심도시로 남아있다. 천연의 요새였기 때문에 [[신라]]의 영토가 다시 경상도 지역으로 축소되어버린 [[후삼국시대]]에는 [[견훤]]의 침략을 끈질기게 막아내며 신라가 수십 년간 버티게 해주었던 최후의 보루 겸 방패 역할을 해주었다. 의외로 견훤은 대야성에서 몇 차례 막혀서 신라 본진을 공략하지 못했을 정도. 하지만 견훤의 포기할줄 모르는 끈질긴 공세에 920년 결국 함락당하고 말았다. 이후 후백제 장수 [[추허조]]가 지키고 있었는데 927년에 [[고려]]의 [[김락]]이 함락하였고, 928년에 후백제의 관흔이 고려 장수 왕충이 이끄는 고려군을 북방으로 유인한 후 신속히 남하해 대야성을 다시 점거하는 등 주인이 계속 바뀌다 결국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고려의 영토가 되었다. 고려 때는 합주 관할로 있었다.[* 삼국시대엔 신라가 대야성을 잃었어도 사벌주와 한강유역을 바탕으로 어떻게든 서라벌 방어가 가능했지만 후삼국시기엔 이 영역이 모두 고려로 넘어가는 바람에 신라가 대야성을 잃음으로 신라가 동원할 야전군 자체가 소멸하였다.] 고려가 통일한 뒤로는 더이상 최전방 요새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후 전쟁사에선 거의 등장하질 않는다. 특히 고려는 [[여요전쟁|거란]], [[여몽전쟁|몽골]], [[홍건적]], [[고려 말 왜구의 침입|왜구]] 등 수많은 외적의 침입을 받았고, 조선 역시 [[임진왜란]]이란 큰 전쟁을 겪었지만, 대야성에서 큰 전투가 벌어진 적은 없다. 특히 조선시대엔 이미 성이 많이 허물어져서 요새로서의 기능조차 상실했고, 지금은 정확한 위치조차 논란인 상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