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우그룹 (문단 편집) === [[대우자동차]] === 한편 자동차 부분에선, 특히 같은 시기 [[현대자동차]]에 비교해서 실제 1990년대 초반까지는 탱크라고 불러도 될 만큼 내구성 및 성능이 우수했기에 과소 평가된 경향이 크다. 게다가 언론의 영향으로 현대에 비해 대우는 뭔가 2인자의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각인됐기에 당시 자동차 판매원들 사이에서 "대우자동차는 연비, 내구성, 디자인 모두 다른 회사보다 좋은데 대우 마크 때문에 팔리지 않는다." 란 말이 돌 정도였다. 특히 대우그룹이 해체되기 이전에 나온 대형 버스, 대형 트럭 같은 대형 상용차들의 내구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었다. 특히 잔고장이 적은 만(MAN) 엔진을 탑재해 1970년대 말 ~ 1980년대 '''운수산업 발전을 견인'''한 명품 [[자일대우버스 BF|BF101]]은 3만 대가 팔린 초 베스트셀러 차종이었다. 서울부터 소도시, 시골까지 BF101 시내버스가 없는 지역은 거의 없었으며, 운수회사들은 도로사정이 열악한 지역에도 과감히 뛰어들며 비로소 제 이익을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의 시내버스 구도를 보자면 현대자동차 버스부문 시내버스의 경우 '''잔 고장이 잦았고'''(특히 [[현대 HD버스|HD160]] 차종이 심했었다. 반대로 HD170은 BF101과 같은 D0846HM-V 엔진 장착), [[쌍용자동차|동아자동차]] [[동아 HA/HR버스|HA20]]의 경우 '''출력은 좋았으나 연비가 나빴으며''' [[아시아자동차]] 시내버스의 경우 한 대 당 '''가격이 비싼''' 걸로 유명했으며, 후에 현대가 1982년에 HD170의 후속모델 [[현대 FB버스|FB485]]를 출시하면서 편의성을 향상시켰으나 당시의 시내버스 업체들은 여전히 연비좋은 BF101을 선호했다. 또한 자동차 합리화 조치 이전의 경우에도 상용차 부문에서는 [[이스즈 엘프|엘프]]와 [[대우 대형트럭|대우 이스즈 대형트럭]] 모델들이 현대와 기아 등의 경쟁자들과 쟁쟁히 경쟁을 이어갔으며, 1980년대 후반에 조치 해제 이후에도 --개쪽박찬-- [[대우 바네트|바네트]]와 [[이스즈 엘프|엘프 2]]를 제외하면 1995년 국내 최초로 독자 개발한 트럭인 [[대우 차세대트럭|차세대 트럭]]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기도 한 바 있었다. 그러나 승용차 부문에서는 라이벌인 현대나 기아가 선진국 시장의 경쟁 압력에 살아남기 위해 기술 자립도를 높이며 꾸준히 상품성을 끌어올린 반면, 대우는 GM과 본격적으로 충돌하기 전까지 GM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경쟁력을 잃었다. 단, 이 점이 기술 개발에 소홀히 한 대우자동차의 실책인지, 50%의 지분을 가지고 대우자동차를 단순 하청 공장 수준으로 두려는 GM의 의도 때문인진 알 수 없으나 1992년 대우그룹이 GM의 50% 지분을 사오면서 적극적인 신차 개발에 나섰다는 것을 보면 후자가 맞을 듯.[* 의외로 대우는 1978년 새한자동차 인수 이후 파워 트레인 쪽 기술 개발을 단행해, 1981년에 독자적으로 XQ엔진을 개발하였으며, 이후에도 후신 격 되는 엔진인 론지 엔진을 개발한 바 있다. 이들 엔진의 경우 기본 베이스는 제법 괜찮았지만, 적용대상이 하필 소형차 뿐만이 아니라 [[대우 로얄|중형차]]까지라 욕먹은 케이스다. 소형 급인 [[새한 맵시|맵시]]에서는 제법 좋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해외 유수의 기업에서도 한계라고 느껴지던 세계 최초의 횡치 직렬 6기통 엔진인 [[대우 XK엔진]]을 개발해 양산에 성공한 바 있다.] 단, 신차 개발을 시작해도 출시까진 4~5년의 시차가 있는데 출시된 시기가 하필이면 IMF였다. 더군다나 독일쪽 기술을 그대로 재현했다면 괜찮은데 그것도 아니고 '''조립 품질이 심하게 떨어졌다.''' 위에서 말한 버스와 달리 승용차는 [[대우 르망]] 문서에서 알 수 있듯 그야말로 엉망으로 나온 경우가 다반사.[* 당시 부평공장에서 일했던 직원의 말에 따르면 주물한 부품의 규격이 정밀하지 않아 조립이 잘 되지 않으면 해머로 때려서 억지로 끼워넣었다고 한다. 그만큼 튼튼하면서도 정교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사실 이 문제는 부평 연구소와 부평 공장의 연구 인력과 노동자들의 경험이 숙련되기 시작하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해결된다.] 1997~1999년 라인 업을 갈아엎기 전의 모델이 씨에로는 오펠 카데트, 프린스와 브로엄은 오펠 레코드 및 [[오펠 제나토어|제나토어]]로, 모두 1980년대가 가기 전에 단종 된 플랫폼을 20세기 끝날 때까지 사실상 페이스리프트 수준으로 버텼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나마 [[대우 에스페로|에스페로]]를 신호탄 삼아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한 고유모델 개발이 도산하기 직전에나마 시장에서 인정받은 것과, 국내 자동차 브랜드 중 채 10년이 되지 않은 단기간에 유럽시장 진출 성공[* 비록 1년 뿐이었지만 [[1999년]] [[폴란드]]에서는 그동안 이어졌던 [[피아트]]의 점유율 1위 독주를 끝내고, 폴란드 국영 자동차업체인 [[FSO]] 인수와 현지 생산 거점 확보 및 공격적인 판매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폴란드의 자동차시장 점유율 1위를 대우가 차지했다. 또 중앙아시아의 경우에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현지 정부와 함께 설립한 '[[우즈오토 모터스|우즈 대우]]'의 인기가 가히 폭발적이어서, 공장이 가동된 1996년부터 대우 브랜드가 사라진 2017년 현재까지도 부동의 점유율 1위를 기록 중이다.]을 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것으로 나름 위안이라면 위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