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전광역시/역사 (문단 편집) == [[대한민국]] 이후 == [include(틀:노태우 정부)] [[파일:attachment/대전광역시/역사/daejn1945.jpg|width=500]] [[1945년]] [[8.15 해방]] 당시 대전부와 [[대덕군]]의 행정구역 상황. [[1949년]] 대전부를 '''[[대전시]]'''로 개칭하였다. [[1950년]] [[조선인민군|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자 매우 짧은 기간동안[* 6.28 ∼ 7.14] 임시수도가 되기도 했다. [[7월 14일]]부터 20일까지 미 24사단이 지연전을 수행하다 심각한 피해를 입은 [[대전 전투]]의 와중에 시가지가 심하게 파괴되었기 때문에 현재의 대전시는 [[6.25 전쟁]] 이전의 모습을 찾기 쉽지 않다. 결국 북한군은 [[7월 20일]] 대전을 점령한다. [[파일:attachment/대전광역시/역사/daejn1963.jpg|width=500]] [[1963년]] [[대덕군]] 유천면 전역, 산내[* 옥계리, 가오리, 삼정리, 호동리. 원래 외남면이었다가(대성리 포함) 1940년 대전부 편입대상지에서 제외돼 산내면으로 이관된 곳들로, 대성리만 산내면에 계속 남고 나머지는 모두 대전시에 편입됐다.]·회덕면[* 대화리, 오정리, 용전리.]의 각 일부를 편입하여 [[대전시]]의 영역이 확장되었다. 대덕군 산내면은 이때부터 [[월경지|실질월경지]]가 되었다. [[1973년]] [[대덕군]] 북면과 유성면이 각각 신탄진읍과 유성읍으로 승격되었다. [[1977년]]에는 대전시에 구제(區制)가 실시되어 [[중구(대전)|중구]]와 [[동구(대전)|동구]]의 2개 구가 설치되었다. [[파일:attachment/대전광역시/역사/daejn1983.jpg|width=500]] [[1983년]] [[대덕군]] 유성읍과 회덕면 전역, 탄동[* 신성리, 가정리, 도룡리, 장동리, 내동리(방현동), 화암리, 덕진리, 하기리.]·구즉[* 원촌리, 문지리, 전민리, 용산리 일부(현 전민동 대덕골프장 뒷산 일대).]·진잠[* 내동리(원내동), 교촌리, 대정리, 용계리, 학하리.]·기성면[* 관저리, 도안리, 가수원리.] 각 일부를 편입하여 대전시의 영역이 확장되었다. 이때 대덕군은 [[월경지|2쪽으로 나뉘어졌다.]] 이 상태로 [[1989년]] 대덕군 폐지 및 [[대전직할시]] 승격 때까지 이어졌다.[* 다만, 위의 지도에서 진잠면 동북쪽에 살짝 튀어나온 부분인 계산리는 1987년 대전시에 편입됐다. 1983년 편입대상지에 포함되지 않아, 한동안 진잠면의 [[월경지|실질월경지]]로 남아 있었다.] 직할시 승격 직전인 [[1988년]]에는 중구에서 [[서구(대전)|서구]]가 분구되었다.[* 분구 당시에는 안영동도 서구로 분리되었으나, 이듬해인 1989년 대전직할시가 승격되면서 중구로 환원되었다.] || [[파일:대전직할시 휘장 (1972-1995).svg|width=200]] || [[파일:대전직할시 시기 (1972-1995).svg|width=400]] || ||<-2> 충청남도 대전시~대전직할시 시절의 대전시 휘장 및 시기[* 1995년 3월 17일까지 사용되었다.] || [[1989년]] 대덕군을 폐지[* 이때 신탄진읍은 신설된 대덕구, 산내면은 중구와 동구에 분할 편입되었고, 동면은 동구, 기성면은 서구, 진잠면(남선리 제외), 탄동면, 구즉면은 역시 신설된 유성구에 분할 편입되었다.]하고 대전시에 병합[* 단, 진잠면 남선리는 논산군 두마면(현 [[계룡시]] 신도안면)에 편입되었다. 이러한 배경 때문인지 몰라도 지금의 계룡시 [[지역번호]]는 충청남도의 041이 아닌 대전의 042를 쓴다. (정확히는 계룡시 출범 이전인 1997년부터 042로 변경) 여담으로 오늘날 남선리는 [[계룡대]]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신도안면(2006년 분리)에서 유일하게 거주지가 있는 리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신도안면으로 변경하기 전 이름이 남선면이었다.]하여 통합된 충청남도 대전시[* 2017년에도 --충남 대전도 아니고-- [[http://v.media.daum.net/v/20170815060005285|충북 대전]]이라고 쓴 기사가 나왔다. [[http://www.ulsanpress.net/news/articleView.html?idxno=93470|경북 울산]]이라 잘못 부르는 것과 비슷한 사례..]가 '''대전직할시'''로 승격되었다. 동시에 서구에서 [[유성구]]가, 동구에서 [[대덕구]]가 분구되어 현재의 5구 체제가 완성되었다. [[1993년]]에 [[대전 엑스포]]를 개최해서 도시의 인지도가 상승했다. [[꿈돌이]]라는 노란색 외계생명체(?) 마스코트는 봉제인형이나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상품으로 나왔고, 대전의 마스코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엑스포 종료 후에는 그 시설과 부지를 활용해 엑스포과학공원을 열었지만 일부 전시관은 거의 문을 닫은 상태이다. 엑스포와 비슷한 시기에 내부에 놀이동산으로 마스코트인 꿈돌이에서 이름을 딴 '''[[꿈돌이랜드]]'''도 런칭했지만 이쪽도 현재 관리상태는 [[막장]]이다. [[꿈돌이랜드]]는 그나마 놀이기구 몇 개를 새로 들여놨지만, 엑스포 유령의 집은 들어가면 웃음이 나올 정도라고 한다. 엑스포가 끝난 뒤 국제 전시관 등을 철거하고 재개발할 계획이었으나 [[1997년 외환 위기]] 크리로 인해 단지내 재개발 계획조차 지지부진한 상황. 2012년 6월 1일, 결국 적자를 못 버티고 꿈돌이랜드가 [[http://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sm=ies_hty&query=%EA%BF%88%EB%8F%8C%EC%9D%B4%EB%9E%9C%EB%93%9C|매각되었다]]. 그후 2018년 현재 부지는 [[기초과학연구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5개 직할시[* 당시에는 [[광역시]]를 이 명칭으로 불렀으며, 울산은 아직 경상남도에 속한 일반 시였다.] 중 가장 [[인구]]가 적었지만 1995년에 [[광주광역시]]의 인구를 앞질렀다. 그리고 같은 해에 지금의 '''대전광역시'''로 명칭이 바뀌었다.--10만명의 인구차이가 5년만에 뒤집어지는 기적-- --다시 역전당할 것 같다-- 1995년 대전광역시 인구가 1,270,873명이고 광주광역시의 인구는 1,257,063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육상 교통의 [[경상도|영남]]·[[전라도|호남]] 분기도시[* [[고속도로/대한민국|고속도로]]는 [[논산천안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서산영덕고속도로]] 등의 대체도로가 건설되어 영·호남 분기도시로서의 역할이 다소 줄어들었다.]가 된 데다가 정부청사 및 신 행정도시의 영향권 등 각종 메리트가 따라붙었으니 발전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전은 [[충청남도]] 남동쪽 구석에 치우쳐 있어서 [[충청남도]] 북서쪽과의 연계가 잘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홍성군]]과 [[예산군]]의 경계[* 충남 전지역에서 2시간 안에 접근할 수 있다.]에 인구 10만짜리 [[내포신도시]]를 만들고 충청남도청을 이전하였다. 홍성과 예산 지역은 대전에서도 [[대전당진고속도로]]로 연결되어있어서 접근성도 나름 괜찮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