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전차총검술 (문단 편집) == 그 외 == [[한국전쟁]] 초기 북한의 기습 침공을 받은 [[대한민국 국군|국군]]이 사용한 전례도 있다.([[http://www.koreastory.kr/bbs/board.php?bo_table=6_25&wr_id=15|#]]) 물론 이 경우도 '''정식 교리는 절대 아니었고''', 개전 초기 전차는커녕 [[장갑차]]도, 대전차화기도 제대로 구비할 수 없었던 국군이 북한군의 진격을 어떻게든 막아보고자 아득바득 달려든 결과물로써, 이 역시 상기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의 최후 수단의 사례 중 하나이다. 즉, 어디까지나 타 국가들의 상황들처럼 '''육탄 돌격 이외의 효과적인 대전차수단이 없었던 상황'''이라서 나온 어쩔 수 없는 [[임기응변]]이었다는 것. 이러한 분전에도 불구하고 전차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와 기습공격의 충격력 때문에 [[제6보병사단]]과 같은 몇몇 예외를 불구하고 전방사단은 패배하여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는 의정부 방면을 방어한 7사단, 2사단, 5사단, 3사단, 수도사단은 이와같은 육탄돌격을 시도하였지만 적을 저지하지 못했다. 그에 반해 1사단, 6사단, 8사단은 북한군을 저지하는 데 성공하였다. 개전 초기 [[춘천-홍천 전투]]에서는 육탄 11용사가 적 자주포와 전차 10대를 파괴하거나 노획하기도 했다. 이때는 아군의 대전차포의 적절한 엄호가 있었고 일본군처럼 무작정 돌격하지 않았다.[* 좁은 지형을 이용해 맨 앞 전차를 무력화시키고 따라오던 전차들이 멈춰설 수밖에 없게 만든 후, 적 전차장이 상황 파악을 위해 해치를 여는 순간 달려들어 전차를 제압하는 것을 반복한 결과이다. 즉, 무작정 달려든 것이 아닌, 치밀하게 짜여진 계획 아래 진행된 전술이다.] 또한 위의 육탄 11용사는 모두 '''생존'''했다. 참고로 1949년 적 토치카에 육탄공격을 가한 [[육탄10용사]]와는 다른 분들이다.[* 반면 현재까지의 기록에 의하면 개성 송악산 고지를 재탈환한 육탄10용사 전원은 전사하였다.] 개전 초기에 미군이 제공해서 한국군이 개전전에 보유하고 있던 2.36인치 M9 [[바주카]]와 57mm 대전차포로는 [[T-34-85]] 전차의 장갑을 뚫기가 어려웠다. 57mm 대전차포는 철갑탄 사용시 320m부터 관통이 되기는 하는데 실전에서 전차가 정직하게 전면을 들이대지는 않을테니 버거운건 사실이다. 게다가 철갑탄이 충분히 보급되지도 않았었다. 그나마 M3 [[105mm 견인곡사포]]로 맞추면 유효타가 들어가긴 하지만 수량이 부족하여 사단 화력지원에도 힘에 부칠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대전차 지뢰나 폭약, 수류탄을 들고 돌격, 그 후에 터뜨리는 전술을 마지막 수단으로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본군은 저게 '''정식''' 교리였다. 할힌골 전투 이후 대전차 능력에 대한 보강이 요구되었지만 일본군은 그때 그 수준에서 별로 발전하지 않았고, 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태평양 전쟁에서 엄청난 재앙을 불러일으켰다. 동맹 추축군 이탈리아에게도 비슷한 게 있었던 거 같다. [[http://m.dcinside.com/view.php?id=arm&no=1423097|#]] [* 효과가 얼마나 있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폴고레 공수사단처럼 훌륭한 사례가 있었던걸 봐서는 육탄공격을 해도 일본군처럼 무모하게 전차 정면으로 달려드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모양이다. 육탄공격하고 별개로 애초에 이탈리아의 대전차 병기가 일본보다 수가 더 많고 효과적이었다. 위의 폴고레 공수사단도 대전차포의 엄호를 받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소련군은 개를 이용한 대전차 전술이 있었다. [[대전차 견]]문서 참조. [* 소련이 대전차 전술 방면에서는 인간의 목숨(...)을 이용한 방어전술을 구사했던 일본군보다는 훨씬 낫다고 볼수있다.] 독일은 [[흡착지뢰]]를 사용했고 영국과 미국은 끈끈이 폭탄을 사용하기도 했다. 물론 이 둘은 쓰기가 힘들긴 해도 사용하면 효과는 있었다. 전차를 상대로 대전차총검술을 사용하는 와중에, 연합군 전함과 상륙함을 상대로는 이른바 후쿠류(伏龍)라고 불리는 '''[[대함창봉술]]'''을 시전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오해가 없도록 첨언하자면 절대로 적 함선에 올라타서 적 선원들을 상대로 창봉술을 한다는 게 아니다. 징집병들을 잠수부로 훈련시켜서 막대기에다 [[기뢰]]를 꽂은 물건을 준 뒤 들고 찌르게 한다는 얘기다. 일본 측의 공식 기록으로는 결국 실전 투입이 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미군 측의 기록으로는 상륙함 일부가 이런 부류의 잠수부들에게 공격을 당했다는 기록이 있어 논란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