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조영(드라마)/등장인물 (문단 편집) === 숙영 === '''숙영''' ([[홍수현]] 扮) [[파일:숙영.jpg|width=500]] 고구려 마지막 태왕인 보장왕의 조카이자 고구려의 공주이며 초린과 더불어 작중 최고의 미녀 중 한 명으로 영특함을 바탕으로 대조영에게 큰 힘이 되는 인물이다. 보장왕이 친딸처럼 키웠다고 한다. 숭무대연 때 처음 대조영을 만났을 때 자객으로 오인하고 난뒤에 대조영으로부터 목숨을 구하게 되고 나서부터 호감을 가졌다.[* 대조영은 개동이라는 이름을 쓸 무렵 비무대회에 참석한 연개소문 (혹은 보장왕)을 없애려는 [[설인귀]]의 계획을 눈치채고 막으려고 했었다. 그때 숙영 역시 입막음을 당해 죽을 위험에 처해있었으나(도중 길을 잘못 들었다), 대조영이 숙영을 구해줘 생명의 은인이 되었다. 이때부터 이미 대조영에게 푹 빠져서 호감 이상의 감정을 가졌음이 암시되는데 이후 대조영이 낮은 관직에 있음에도 언제나 존댓말을 하거나 숙영을 좋아하는 남생이 대조영에게 숙영을 데려오라 할 때 "한 신하가 어찌 왕족에게 오라가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라며 대조영에게 실망을 표할 때에도 대조영이 연남생의 심부름을 해서가 아니라 숙영은 대조영을 좋아하는데 [[둔감|정작 대조영은 눈치가 없었던 것]]에 화난 듯한 뉘앙스가 강하다.] 정확히는 숙영은 초반에 대조영과 연남생 둘 다 가졌다. 대조영은 각주에서 나오듯이 생명의 은인에 숭무대연에서 설인귀의 고구려 지휘부 암살을 막았고 연남생은 고구려를 지탱하는 연개소문의 장자라서 고구려를 수호하는 위치에 있었는데 당시 숙영은 보장왕이 혼인하라고 권유하면 자신은 고구려를 지킨 영웅과 혼인할 거라고 이야기 했었기에 당시 숙영에게 대조영과 연남생은 동등한 신랑 후보감이었다. 그래도 숙영이 연남생보다는 연개소문은 물론 자신의 목숨도 지켜준 대조영에게 남자로서 끌리고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연남생이 자기 실책으로 당나라군에 패배하고 군사를 전멸시키고 자기만 목숨을 건진채 목숨만 보전한 사이에 대조영이 이끄는 만리장성 인근 고려성에서 같이 온 군사들이 백제성에서 데려온 백제 유민들의 항해술에 힘입어 당나라군을 교란하면서 사수에서 설인귀가 지휘하는 당나라군에게 대패를 안기는데, 대조영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면 당나라군을 교란할 수가 없어 승리한 뒤에도 계속 몸을 감췄다. 이때 고구려에는 당나라군을 패퇴시킨 장수가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연남생일거라고 신하들이 지레짐작하고 있었고[* 연개소문은 연남생이 군사를 전멸시킨 것을 두고 아들을 부끄럽게 여겨 죽어도 싸다고 했다가 신하들의 말에 분노가 풀렸다.] 숙영도 그 말에 연남생이 고구려를 구했다고 생각해 호감이 생겨 이 때는 남자로서의 끌림은 두고서라도 고구려를 구한 영웅이라는 점에서는 대조영보다 연남생에게 호감이 증가하여 연남생이 복귀하자 연남생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지만 연남생은 어안이 벙벙했고 영문을 몰라해서 연남생이 설인귀를 패퇴시킨 주역이 아닌게 밝혀지자 숙영은 고려성에 갔다가 실종된 대조영이기를 바랬는데 사수에서 활약하던 군사들이 돌아오고 그게 대조영의 일행인 것이 드러나자 숙영은 대조영에게 달려가 감사의 인사와 만면에 활짝 웃음을 보였다. 이걸 본 연남생은 숙영의 마음이 대조영에게 있는 것을 알고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되고 이후 고구려를 배신하고 당나라에 붙어 고구려를 멸망시킨 원흉이 되어 연남생을 증오하게 되었다. 즉, 숙영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은 대조영 한 사람뿐이다. 평양성이 함락될 때 보장왕이 당나라로 압송되자 대조영을 따라 안시성으로 갔으며 각종 잡일을 도맡아 하고 대조영이 이해고에게 습격을 당해 사지를 못 쓰는 상태가 되었을 때 온 힘을 다해 헌신적으로 간호하는 등 왕족의 권위를 벗고 고구려 부흥에 평생을 바친다. 보장왕이 조선왕으로 안동도호부에 오자 다시 보장왕과 재회하지만 보장왕의 고구려부흥운동이 발각되며 보장왕과 함께 압송되어 노비로 전락하여 당나라 장안성에서 노비로 일을 한다. 이후 보장왕과 재회한 뒤에 보장왕의 부탁에 따라서 대조영의 아내가 되었으며 동모산 부근에서 고구려유민을 도우면서 영주에 있는 대조영을 도왔으며[* 고구려 공주였던 만큼 그 통찰력으로 당나라와 거란에 대해서 지속적으로도 경계하며 대중상과 함께 이해고를 매우 경계하는데 그도 모자라서 미모사에게 은밀히 내사를 내려 그를 제거하려고 하는등(이 사실을 대조영이 알고 개입하려고 했을 때 그녀가 대조영을 직접 제지한 이상 분명하다.) '''온화한 숙영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제대로 나아간다.''' 심지어 이해고의 처형을 직접 거론할 정도다. 그녀와 함께 이해고를 제대로 경계한 대중상조차도 이 말을 듣고 순간 놀란다.], 후에 대조영이 나라를 선포하며 발해가 건국되자 황후가 되었다. 주인공인 대조영의 히로인이지만, 원작 소설과 드라마의 차이가 크다. 원작 소설에서는 비중이 큰 반면, 드라마에서는 비중이 극히 적으며 제작진의 거란족 우대에 의해 멀쩡한 대본의 분량도 방송에서 잘려나가는 등 수난을 당했다. 심지어 대조영과의 첫날밤 장면까지 편집되었을 정도이다. 오히려 초반부에는 초린이 히로인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아무래도 대조영이 당나라를 탈출할 때부터나 대조영과 함께 하는데다, 주로 하는 일이 후방 지역 통치이다 보니 비중이 있을래야 있기 어려운 것이다.[* 간단히 말해 등장은 하되 매번 상황이나 요약하는 설명충 정도이다.] 그나마 천문령을 지키면서 당나라 첩자들에게 대군이 있는 것처럼 속여 당나라가 천문령을 침략하지 않게 하는 꾀를 내보이기도 한다. 라이벌이자 한때 대조영의 연인이었던 초린과도 평생 악연인지 인연인지 모를 관계를 유지한다. 상호간에 직접 적대하거나 한 적은 없지만 묘하게 얽히는 관계이다. 당나라 첩자로 평양에 들어와 걸사비우와 사부구에게 차례로 죽을 뻔한 초린을 숙영이 살려준 것이 첫 대면이였으며 초린이 대조영과 함께 고구려 부흥운동에 합류하면서부터는 둘이 절친한 관계[* 기본적으론 초린이 숙영에게 존대하는 관계였지만 숙영은 친우처럼 대했다.]이면서도, 대조영과 함께 생사를 넘나드는 전선을 누비는데다 대조영의 마음을 얻기까지한 초린을 숙영이 아주 약간의 질투를 섞은 부러움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후 초린이 거란족으로 돌아가고 동명천제단이 붕괴되어 숙영이 당나라의 장안성 액정궁에 끌려가게 되었을때, 초린은 '내가 해줄수 있는게 없다','그때의 나와는 다르다'는 식으로 퉁명스럽게 대답하면서도 어쨌든 자기 생명의 은인인데다 대조영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무시할수가 없어 틈틈히 대조영의 소식을 전해준다던가, 숙영이 궁녀들에게 찍혀 살해당할 뻔한 걸 구해주고 아예 궁에서 빼돌려주는 등 츤데레스럽게 도와줄건 다 도와줬다(...) 거란국 건국 후에는 숙영이 초린의 부탁을 받고 손만영의 반란 진압에 협력한다. 거란국 멸망 이후 천문령을 넘는 과정에서는 거란족 자체에 대한 경계심에다 검이 문제로 인한 일종의 스트레스까지 겹쳐 숙영이 초린을 경계하게 된다. 하지만 천문령에서 초린이 스스로를 희생하여 대중상과의 포로교환을 이끌어내자 숙영은 이를 크게 후회하고 초린이 포로교환을 위해 떠나던 때에 눈물로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며 작별인사를 하는 것으로 둘의 인연은 끝이 난다. 드라마 막바지에는 대조영이 아들 이검을 총애하자 이검이 대조영을 이은 발해의 태왕이 될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실제로 대조영은 이검을 후계자로 염두에 두고 있다는 묘사로 보아, 숙영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다. 대조영의 후계자를 두고 거란 피가 섞인자가 왕이 되어서는 안된다면서 자신의 아들을 태자로 책봉하라고 대조영에게 재촉하여 대조영과 갈등을 겪기도 한다. 물론, 이는 황후로써 당연히 해야하는 의견 피력이기도 하다. 게다가 숙영이 다른 인물도 아니고 '''고구려 왕족'''이었던 것을 생각해본다면 고구려의 후계를 자처한 발해로써는 숙영의 혈통을 무시하면 안됐다. 황후로서의 숙영은, 대조영이 순간의 감성에 젖어 틀린 선택을 하기 전에 계속해서 [[팩트폭력|그의 생각을 환기해주는 역할]]이다. 다만, 숙영의 태도가 다소 예민하게 보였던 까닭은, 숙영은 이검 역시도 발해의 후계자 자리를 넘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후에 이검이 미련없이 스스로 발해를 떠나자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고, 본인이 강력하게 이검을 견제했던 행동을[* 미모사, 고구려 출신의 원로 대신의 여론을 모으면서까지 이검을 견제했다.] 후회하며 눈물을 흘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