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종교 (문단 편집) === [[미군정]] ~ [[대한민국]] === [[8.15 광복]]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북한]] 정권은 자신들의 정통성 확립에 유용하다고 여겼는지 다른 종교들에 비해 비교적 호의적으로 취급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에서도 근근이 명맥을 잇고는 있으나 [[불교]], [[천주교]], [[개신교]] 등에 밀려 현재는 굉장히 [[마이너]]한 군소종교가 되었다. 같은 구한말 민족종교인 [[원불교]], [[천도교]]보다 교세가 약하다.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원불교]]는 무려 13만 명에 [[천도교]]도 10만 명은 되는데 대종교는 고작 3766명이다. [[이슬람]](3만 5천 명 추정)보다도 훨씬 적다. 3만 4천 명으로 잡히는 '증산교'보다도 적다. 다만 증산교는 [[증산 계통의 종교]]를 모두 아우르는 말이라 통계에 허점이 있다. 2000년대에 모종의 큰 갈등을 겪고 총전교가 둘로 나뉘는 등의 위기가 닥쳤으나 무사히 해결되었다. 현재는 선도사 출신의 인물이 총전교 자리에 오르면서 서서히 안정되었고 사이트 관리가 다시 정상화되면서 자료도 올라오고 있다. 다음에 개설된 대종교 카페 한 곳은 일부 신도의 정성어린 관리 덕인지 총본사 사이트보다 자료가 더 많으며 이 카페를 통해 대종교에 나오게 되는 경우도 꽤 늘어났다. 2012년도부터 총본사 주차장을 거주자 우선 주차장으로 운영 중이라고 하며 현수막도 걸려 있다. 참고로 총본사로 향하는 골목길이 굉장히 좁은데다 불법주차가 심해서 이동에 상당한 불편이 있었으며 결국 대대적인 단속이 시작되었다. 1대 교주였던 나철이 독립투쟁의 방안으로 단군교라는 형태를 빌렸다면 2대 교주가 된 [[김교헌]][* 이후 적은 내용을 보면 역사가로 포함시키기 어려운 인물이지만 단순히 번역만 한 [[김택영]], [[현채]], [[장지연]] 같은 인물도 역사가로 포함시켜 버리는 얇디얇은 한국 사학사에서는 그냥 역사가로 언급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전 시기의 역사가의 역사책이라고 생각 없이 받아들이면 안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의 경우는 방향성이 전혀 달랐던 것이 큰 원인이 되었다. 김교헌이 저술한 '신단실기'와 '신단민사'와 같은 경우 모두 대종교 입교 후에 저술된 것으로 엄밀하게 말하자면 역사서라고 하기보다는 종교 교리 서적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책을 쓰는 과정에서 사료로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국이상국집과 같은 일반적 물건 외에도 근거 없이 포함된 자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들에서 배달족이라는 단일민족을 설정하고 여기에 [[여진족]], [[거란족]] 등을 포함시키는 설명이 등장한다. 또한 환단고기에 괜히 신선술 이야기가 많은 것이 아니다. 실제로 환단고기에 근거가 되는 고사서가 존재했다고 가정을 해도 이 정도까지 종교 교리 서적과 일체화되어 버리면 원류를 파악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지므로 사서로서의 가치가 극도로 낮아진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당시 대종교(라기보다는 나철)와 인연이 있던 신채호와는 사이가 틀어지게 되면서, 더더욱 역사서보다는 종교교리 서적에 가까워졌다. 여기서 종교적 교리를 조금 약하게 하면 북방사를 중심으로 하는 이상룡의 사학이 된다. 그리고 [[김교헌]]-[[이상룡]]의 방법론에 (그렇지 않아도 민족 개념을 지나치게 확대한 바람에 큰 차이가 없던) 일본의 만선사관+내선일체를 포함해 버리면 [[최남선]]의 불함문화론이 등장해서 대동아공영권을 돕는 논리가 되어 버린다. 환빠의 구심점이 되는 인물이 친일을 했네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야기도 이 논리에 포함된다. '양 극단은 통한다'는 씁쓸한 이야기의 좋은 일례이다. 초대 [[문교부]] 장관인 [[안호상]](安浩相)[* 1902~1999. 호는 한뫼. 1948년 정부수립 당시부터 1950년까지 초대 [[문교부]] 장관을 역임했다. 1992년부터 1997년까지 대종교 16대 교주(14대 총전교)이기도 했다. 대종교 교주이던 1995년에 [[북한]]이 [[단군릉]]을 개건했다며 초청장을 보내자 냉큼 월북하여 행사에 참석하고 돌아와 수사를 받기도 하였다.], 1980년대에 단전호흡 등이 유행하는 계기가 되었던 소설 단(丹)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봉우 권태훈[* 1900~1994. 호는 봉우(鳳宇), 여해(如海) 등을 사용하였다. 단전호흡 등을 비롯한 이른바 '''단학수련'''을 유행케 했을 뿐만 아니라, 민족주의적 감정을 고취시키는 '백두산족에게 고함'(83년 출간) 등의 책을 펴내었다. 1980년부터 1992년까지 대종교 14~5대 교주(12~3대 총전교)이기도 했다. 대종교 총전교로서는 안호상 박사의 바로 윗 선임자가 된다.] 등이 대종교 총전교(교주)로 재임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