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종교 (문단 편집) == 기타 == 일제강점기 독립투사 상당수가 대종교도였다. 일제 말기에 거의 모든 종교들이([[유교|유]], 불, [[기독교]], 천도교) [[친일]]을 할 때도 대종교가 친일을 하지 않은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으나 그간 쉬쉬하며 감추었던 친일 행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2대 교주 [[김교헌]]은 본래 한일합방 찬성 상소를 했던 인물이었다.[* 박환, <만주지역 독립운동가 김교헌의 민족운동>, <<전쟁과 유물>> 제4호, 전쟁기념관, 2012, 203쪽.] 그 공로로 일한합방기념탑에 합방 공로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다만, 이 경운 친일로 인정되지 않는다. 선친일 후항일 사례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거물급 친일파 심종순, 이규환, 민병석, 이재곤, 유진찬, 윤덕영이 1922년에 대종교에 입교하였고 막대한 자금을 대어 대종교 남도본사가 유지되었다.[* 삿사 미츠아키, <<한말 일제강점기 단군신앙운동의 전개>>,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3, 117~118쪽.] 대종교 동창학교 교사를 지낸 김규환은 김이대로 개명한 뒤 1930년대 간도협조회의 앞잡이가 되었다.[* 이용창, <독립운동가인가, 변절자인가>, 민족문제연구소, 2017.7. [[https://www.minjok.or.kr/archives/89992]]] 1934년에 일본총영사의 허가를 얻어 1940년도 대종교보에는 황국신민 서사를 첫 장에 싣고, 일제의 괴뢰국 만주국 건국이념인 오족협화를 주제로 방송을 하였다. || [[파일:external/tong.visitkorea.or.kr/1809400_image2_1.jpg|width=400]] || [[파일:external/0750a50b316e9cc612613b0eafa4b0112edfc73eab0105fccd2fea6a4b305de9.jpg|width=400]] || 대한민국에 있는 단군/민간신앙 관련 유적이나 문헌에 종종 '한배검'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은 다 대종교와 관련이 있거나 후대에 대종교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은 것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태백산]] 천제단(천왕단)으로, 1950년 이후에 일부 흐트러진 것을 정비하면서 석단 위 제단 앞면 축대에 천제단 대종교태백지사근제(天祭壇 大倧敎太白支司謹製)[* 대종교 태백지부가 천제단을 조심스럽게(공경스러이) 만들었다는 뜻이다.]라고 적혀 있고 제단 위에는 '한배검'이라 씌어진 작은 비석이 고정되었다. 여담으로 태백산 천제단은 국가지정문화재(중요민속자료 228호)로 지정되었기 문화재 보존 차원에서 태백산 천제(天祭) 등 특별한 행사가 아니라면 제물을 올린다거나 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하지만 일반 관광객들이 올라가서 상을 차리거나 향을 피운다거나 심지어 모 기독교 단체에서 레이드를 했다가 처벌을 받은 [[http://news.joins.com/article/3161719|사례]]까지 존재한다. 대종교는 [[개천절]] 국경일 지정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기도문은 따로 없으나 깨닫는 말씀[* '''세검 한몸이신 우리 한배검이시여, 가마히 우에 계시사 한으로 듣고 보시며 나아 살리시고 늘 나려주소서'''라는 내용의 짧은 기도문이다.]→천부경→삼일신고 순으로 독송하는 것을 천경신고라고 한다. 참고로 깨닫는 말씀은 세 번 독송하나 천부경과 삼일신고(천경신고)는 한 번씩만 독송하며 경배시간에는 정해진 예원이 천고(큰 북)을 치는 동시에 독송하는 편이다. [[사이비 종교]] 의혹이 있는 [[단월드]]와는 관계 없지만 그쪽에서 [[나철]]이 그들의 시초라고 밀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