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통령경호처/역사 (문단 편집) === [[국민의 정부]] === [[파일:attachment/PSS2000.jpg]] 1998년 2월 퇴역 육군중장 출신인 [[안주섭]] 장군이 대통령경호실장에 임명되었고, 유일하게 김대중 대통령의 5년 임기를 같이 했다. 국민의 정부 시기 경호실의 가장 큰 변화는 '경호공무원의 특정직 전환'이라 할 수 있다. 1999년 12월 경호공무원을 별정직에서 특정직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대통령경호실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2000년부터 경호공무원도 판사, 검사, 군인, 경찰, 소방, 국가정보원 직원과 같은 특정직 공무원으로 신분과 정년을 보장받게 되었고 이 때부터 신규 임용되는 경호공무원은 모두 7급으로 공채하게 되었다. 더불어 경호공무원에 무도인의 진출이 줄어들고 명문대 출신이 늘어나기 시작한 때도 이 시기이며 미국 SS와의 교류도 늘어나서 외국어에 능통한 경호공무원도 늘어난 것은 물론 SS의 경호 철학과 노하우를 접목하여 경호 체계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덕분에 [[2000 남북정상회담|2000년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과 역사상 최초로 26개국의 국가 수반이 한국 땅에서 한 자리에 모인 아시아 유럽 정상회의(ASEM. 이 2000년 ASEM회의 이전까지 복수의 외국 정상이 한국 땅을 밟은 일이 없었는데 이는 경호 미비로 국가원수가 사망한 10.26 때문에 더 그렇기도 했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 한일 월드컵]] 등 범국가적인 대형 행사를 큰 사고 없이 치러낼 수 있었다. 그 외에도 1998년 5월부터 단체에 한하여 허용되던 청와대 경내 관람을 개인에게까지 확대했고, 2001년에는 [[칠궁]]도 개방하였다. 칠궁(七宮)은 조선 500년 동안 아들이 왕위에 오른 [[후궁]] 7명을 모신 사당으로 궁정동에 위치하는데 [[1.21사태]] 이후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다. 이 시기의 수치스런 역사로는 1999년 6월 3일 김포공항에서 일어난 김영삼 페인트달걀 투척사건이 있다. 김영삼이 김포공항에서 일본으로 출국하는 길에 박의정이라는 70대 노인이 투척한 적색 페인트가 든 달걀을 맞은 사건으로 당시 경호를 경호실이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치가 맞다. 범인 박의정은 법원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