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푸가 (문단 편집) == 사후의 재평가 == 여타 후기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곡도 베토벤 사후 한참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후배들인 [[펠릭스 멘델스존]]이나 [[로베르트 슈만]]도 대푸가가 워낙에 복잡 난해한 작품이다 보니 '아, 그거 대선배님의 걸작이죠'라는 요식 행위성 찬사만 보냈을 뿐이고 곡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이런 [[넘사벽]]스러운 난이도가 연주 기술과 음악 어법의 발달로 조금씩 극복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에도 이런 경향은 크게 나아지지 않을 정도였고, 20세기에 와서야 [[아르놀트 쇤베르크]][* 쇤베르크의 예술적 지우였던 표현주의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가 "당신의 음악적 요람은 베토벤의 대푸가였다." 라고 말한 적도 있다.]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사실 그다지 열광적인 베토벤 지지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푸가에 한해서는 지금도 현대적인,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현대적일 작품이라고 유보 없이 극찬했다.] 등이 곡을 분석하고 연구하면서 본격적인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또한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베토벤의 모든 작품 중 가장 위대한 걸작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뉴욕 타임스]]에 기고하는 음악 평론가 Alex Ross는 "대푸가"를 "음악학의 성배(a musicological Holy Grail)"라 칭하면서 "역사상 가장 강력한 작곡가의 가장 급진적인 작품(the most radical work by the most formidable composer in history)"라고 서술한 바 있다. 다만 베토벤이 아르타리아의 제안을 받아들여 6악장을 교체한 것에 대해서는 지금도 찬반 의견이 분분하다. 비록 베토벤 자신이 이 결정을 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자신의 진정한 [[의지]]라기 보다는 조카 칼의 [[자살]] 기도에 의한 [[멘붕]]이나 수입 개선을 위한 궁여지책이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대푸가가 진정한 6악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대로 이 푸가가 그 자체로 완성도를 갖고 있고, 베토벤이 [[오페라]] [[피델리오]]를 위해 두 번째로 작곡한 서곡인 레오노레 서곡 제3번처럼 이전 1~5악장의 존재감마저 압도할 정도이므로 곡의 균형을 깨뜨렸다고 여기는 이들은 새로 들어간 6악장을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1960년대를 전후해 베토벤의 원래 의도대로 카바티나 5악장 다음에 이 대푸가를 6악장으로 연주하는 4중주단이 나오기 시작했고, [[도이체 그라모폰]]이 1990년대에 내놓은 베토벤 전집 앨범의 현악 4중주 파트에서도 대푸가를 6악장으로 놓고 새로 작곡된 6악장은 보너스 트랙처럼 뒤에 실어놓는 등 초연 당시의 모습 그대로 연주/녹음하려는 경우도 많아졌다. 복잡한 탄생의 배경 탓에, 많은 연주자들은 무대에 올릴 때에 여러 경우의 수로 작품 번호 130과 대푸가를 연주하게 된다. 1) 원래의 베토벤 작곡대로 작품 번호 130의 6악장을 대푸가로 연주하는 방식 2) 베토벤의 개작을 받아들여, 작품 번호 130의 6악장을 개작된 론도로 연주하는 방식 3) 베토벤의 개작을 받아들여, 작품 번호 130의 6악장을 개작된 론도로 연주하고, 이어서 대푸가를 별도의 프로그램으로 연주하는 방식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