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학별고사 (문단 편집) ==== 광복 이후 ~ 1980(81)학년도: 본고사(+예비고사) 세대 ==== 광복 이후 [[대학수학능력시험]]처럼 국가 주도의 학력평가시험이 없던 시절에는 대학 '''자율적으로''' 학생을 뽑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학별고사(본고사)만 있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부는 1962학년도에 사립대학들의 입시비리를 없앤다는 취지[* 당시 정원 외로 돈을 받고 입학 시키는 일이 사립대학들 사이에 만연했다.]로 전국 대학 총정원의 1배수를 국가시험으로 선발하는 [[충격과 공포다 그지 깽깽이들아|충격과 공포]]의 정책을 시전했다.[* 이 때 학과별로 총정원을 선발했기 때문에 일류대학의 경우 전국 공통 커트라인보다 상위의 점수를 받고도 탈락하는 학생도 있었고 반대로 커트라인을 넘는 지원자가 거의 없어 미달되는 학과도 있었다. 1차 탈락자는 미달된 대학의 동일 학과에 지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63학년도 시험을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 이후 1969학년도부터 340점 만점의 예비고사를 통해 1차로 지원자를 거르고[* 시행 첫해에는 총정원의 1.5배수를 선발] 2차로 본고사를 치르게 되었지만, '예비고사는 예선통과고 역시 ''''본고사가 본게임'''''이라는 인식이었다.[* 다만, 1976학년도 대학입시부터 대부분의 대학이 예비고사 반영율을 대폭 높이게 되어 예비고사가 입학을 좌우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져 이런 인식은 어느정도 사그라들었다.] 당연히 본고사는 각 대학에서 치렀으며 국어, 영어, 수학이 기본인데 이걸 그대로 가져가거나 여기에서 몇 과목 추가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시절 입학하였던 현재의 장년층 내지 노년층(특히 교수들) 중에는 자신이 본고사 세대였다는데 자부심을 갖고 학력고사 세대와 수능 세대를 낮춰보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물론 입시가 쉬워졌다고 학생들의 전반적인 능력이 떨어지는 게 아닌 만큼 꼰대짓에 불과하다. 또 교수 정도 되면 연구 실적으로 말해야지 대입시험 성적으로 자부심을 갖는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본고사의 장점은 문제가 매우 어렵고 모든 문제가 서술형이기 때문에 학생의 실력을 가려내는 변별력은 탁월하지만, 심화된 사고력의 사교육이 만연하게 된다는 매우 큰 단점이 있었다. 현재 본고사식 입시가 대세인 [[일본]]의 예시를 들면, [[도쿄대학]]과 [[교토대학]]은 둘 다 일본에서 1, 2위를 다투는 [[킹왕짱]] 종합대학이지만 출제 교수진에 따라 문제 성향이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 지금 입시 학원에서 '서울대반', '연고대반' 등의 반 이름도 수능 성적에 따른 수준별 줄세우기 분류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아니고 지망하는 대학별 본고사 난이도와 성향에 따른 60~70년대의 분류가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다.] 이런 본고사식 입시는 하루이틀 벼락치기로는 해결할 수 없고, 오랜 시간에 걸쳐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스템에 비해 교육상품의 가격이 월등히 높았다. 특히 교육열이 높은 한국에서는 1970년대 고액 과외가 성행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이들 세대는 최소 [age(1962-02-28)]세이며, [[2027년]] [[2월 28일]]경을 기점으로 본고사 세대는 모두 노인이 된다.[* 1980학년도 조기입학자 제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