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민국/교육열 (문단 편집) === 한국전쟁 후의 사회혼란 === [[6.25 전쟁|한국전쟁]]은 한국 사회를 초토화시켰다. 거의 모든 것이 불타고 무너졌으며, 행정력을 가진 정부라는 것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막 정부를 수립하던 시절에 미군정은 한국의 교육을 큰 틀에서 유지하되[* 어차피 제도 자체는 서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교수요목'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교육과정을 작성하여 그것에 맞추어 학생들을 가르치도록 지시한다. 물론 교과서야 미국의 지원하에 새로 찍어내기는 했고 그 덕택에 미국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기는 했지만 교과과정을 하루아침에 다 바꿀수는 없는 노릇이니 일제의 잔재가 꽤 남게 되었다. 이때가 한국 교육의 역사에서 '교수요목기'라고 불리는 시대다. 이때, 국민들은 한번 더 '다 같이 못 사는 시대'를 겪게 된다. 극소수의 잘 사는 사람이 있어봤자 옆집 사람이 못살면 별다른 차이가 없다. 당시 한국인들이 체감하기에 한국은 정말 힘든 시기였고, 너나 할 것 없이 다 가난한 상태였다. 당연히 공부를 하면 공부하는 대로 훌륭해지고 국가에 기여할 수 있었고, 이미 교육의 힘을 잘 알고 있었던 국민들은 아낌없이 교육에 투자하였다. 이 시기의 교육은 해방 이전의 교육과는 사뭇 다른 의미와 양태를 띠기 시작한다. 우선, 과거의 교육이 근대적인 사회로 급변하는 사태 속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근대적인 문물을 습득하고,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학교 설립을 요구하고 운영하는 것이 좀 더 강한 의미를 지녔다. 그러나 해방 뒤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는 교육을 통한 지위 상승이 가장 큰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공동체를 위해 교육을 하던 것이 개인을 위해 교육을 하는 것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또한 교육열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교육을 하려는 열망이 계몽주의와 맞물려 아주 반가워해야 할 것으로 생각되었으며, 약간의 부작용이 있더라도 한국인의 교육을 향한 열정의 증거라며 기뻐했다. 그런데 이것이 점차 병적인 것으로 변질되어, 자녀교육을 위해 지나치게 자신을 희생하는 부모라던가, 오로지 개인의 욕심만을 위한 공부, 그리고 점점 심해지는 부작용 때문에 교육열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더 이상 긍정적이지만은 않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