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민국/농축산업 (문단 편집) == 고대 == 한반도에서 농사를 짓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 ~ 4세기경으로 추정되며 단군의 고조선 시절 한사군의 설치로 이 때부터 한반도의 농경기술과 문화가 진보되어 갔던 때였다. 또 삼국시대에는 수도(水稻)의 도입으로 본격적인 벼 농사를 할 수 있었고 기상학과 천문학의 발달로 한반도 농경문화는 발전을 더해가게 되었다. 고려왕조 때는 육식(肉食)을 금하고 채식문화 위주로 갔던 영향 때문에 농산물에 대한 재배가 성하게 되었고 농업방식도 발달하여 계단식으로 경작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농토를 확장하는 등 농업문화가 비중을 차지하였고 목축(牧畜)이 가능한 목마장(牧馬場)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육식문화가 부활한 조선왕조 때는 [[신분제도]]에 따라 농민층은 평민층으로 구분되었고 초기까지는 농업문화가 어느 정도 발달하였으나 1592년 [[임진왜란]]과 정묘/병자호란 그리고 일부 관리들의 반란과 내전, 그리고 기근 등으로 농업이 점차 어려움을 맞기도 하였고 세도정치와 권력다툼으로 농민들의 생활도 어려워져가는 고난기를 겪기도 하였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한반도 농업문화에도 영향을 받게 되면서 [[일본]]과 서구에서 건너온 밀로 만든 빵이나 과자 등이 들어오게 되면서 이 때를 계기로 쌀과 쌀밥으로 주식을 삼던 조선의 식문화를 바꿔놓게 되면서 한반도 쌀농사를 비롯한 농업에도 영향이 있었고 개화를 계기로 자본주의 방식의 도입으로 인해서 토지의 약탈이 시작되는 등 우여곡절도 겪어왔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및 [[청일전쟁]] 때는 농민들이 민중봉기에 참가하였다가 일본군에 의해 대거 사살되어 희생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 때는 조선 농민들의 수난과 혹사가 이어졌던 때로 1910년 [[조선총독부]]가 조선 농민의 농토를 모두 몰수하여 총독부 명의하에 친일파 지주들에게 넘겨버리면서 많은 농민들이 빚을 지거나 농토를 상실하며 실향민이 되는 처지를 겪었고 여기에 [[산미증식계획]]으로 인한 강제적 쌀 생산을 강요받으면서 농민들의 수난과 혹사가 이어지기도 하였다. 또 일제 말기에 접어들면서는 전쟁 체재로 인해서 조선의 쌀이 모두 일본군 군량미로 강탈당하는 등 혹사가 이어져갔고 그 결과 조선의 농업은 이때를 계기로 침체기를 겪게된다 농업 뿐 아니라 가축들도 모두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빼앗기는 등의 수난이 이어졌다. [[3.1 운동]] 때도 농민층 일부가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일본군경에 의해서 사살되어 희생되기도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