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 (문단 편집) == 역사 == 예장 백석은 본디 주류 [[총신대학교|총회신학교]]에 대한 비주류의 반발로 인한 합동의 1976년의 갈등으로 이어진 1978년의 분열에 뿌리가 있다. 당시 총회신학교의 김희보 학장의 논문의 표현으로 인해 생겨난 불화로 1978년 비주류 방배동총회신학교[* 서울의 방배동에 위치했다.]가 다시 분열하면서[* 가장 큰 교단은 예장 개혁으로, [[광신대학교]], [[개혁신학교]], [[개신대학원대학교]]가 그 산하 신학교였다.] 등장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진리)가 시초이다. 이후 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과 통합하여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정통''')으로 개칭한다. 이후 2009년에 교단의 학교 이름을 본 따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으로 개칭하고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의 일부와 통합한다. 이후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의 일부 교회를 흡수하여 현재에 이르게 된다. 백석의 역사가 대신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작았던 군소 교단들의 스노우볼링이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통합측)이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과 통합하면서 외부상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의 규모는 커졌으나 내부상으로는 통합 측(대신+백석), 수호 측, 석수 측으로 분열되었으며, 신학교 3개도 교단에 따라 분열되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수호 측은 잔류를 선택했고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석수 측은 독립을 선택하여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과 결별하고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석수) 교단을 새롭게 창립하였다. 결국 2018년 대신 통합측이 백석과 통합하며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대신)이라는 이름으로 합쳐졌다. 대신 명칭은 수호측이 가져갔다. 이후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진리)와 통합을 하였다. 2018년 총회에서 파행을 겪자 2019년 총회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장종현 목사를 총회장으로 추대하였다. 총회 임원직은 이후 몇년간 총회장과 증경총회장들이 선출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크기와 상관 없이 백석, 대신 계열이라고 할 수 있는 교단은 예장(백석),(백석대신),(대신),(대신복원),(대신석수), (정통대신)[* 김치선 목사의 아들인 김세창 목사가 대신 18회기 총회장을 마친뒤 분립한 교단.], (개혁대신)[* 전광훈 목사와 결별한 목사들로 이루어진 대신호서 교단이 개혁 종로측과 합동한 교단.]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