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문단 편집) == 파생 교단 == 분가한 순서 순으로 서술. 예장 합동이 분가한 이후로 별다른 분열의 역사가 없다는 관점도 있지만, 통합도 이런저런 이유로 꾸준히 목사들이 이탈하여 파생교단이 생기고 있는 중이다.[* 다만 합동 탈퇴 이후의 교단들은 대부분 분열이 아니라 탈퇴 후 창설로 세워졌고 예장 통합과 교류가 활발한 경우가 많아 통합 계열 교단이 아닌 독자적인 교단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우세하다. 하지만 다른 장로회 계파도 합신, 합동보수, 브니엘처럼 파생 교단들이 탈퇴 후 창설로 세워진 경우도 더러 있으며, 탈퇴 후 창설이라도 어쨌든 예장 통합 출신 목사들이 세웠기에 예장 통합에서 분가한 것은 마찬가지라 이들 교단의 창설 과정에서 통합에 대한 언급이 필수적이기에 이해를 돕기 위해 서술한다.] * [[기독교대한복음교회]] : 1935년 조선예수교장로회 경남노회가 평신도 최태용을 제명하여 탄생한 교단이다. 최태용은 일본 유학을 하면서 [[우치무라 칸조]]의 [[무교회주의]]에 영향을 받아 사실상 [[퀘이커(종교)|퀘이커]]의 분파로써 활동했으며, 당시 장로회를 비판하며 [[신정통주의]] 수용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최태용은 복음교회를 창립하며 목사가 되었다. 하지만 최태용 목사도 무교회주의에 큰 한계를 느껴서 무교회주의를 폐기해버리고 민족주의로 신학 노선을 변경하여 그냥 한국 토착 교파가 되었다. 그래서 교세는 매우 작지만 엄연한 주류 교파이다. 최태용의 탈퇴 당시 오늘날의 수도권과 호남지역 교회에서 동조자들이 있었다. 이는 오늘날 해당 교단 교세가 형성된 원인이며, 최태용의 신학적 이단성[* 삼위일체 교리를 거부한 것이 대표적이었다.]을 정정한 지동식 박사 역시 호남에서 남장로회 선교사를 통해 복음을 믿은 인물이다. * 대한예수교장로회(중앙) : 1970년 여자목사 안수에 찬성하는 목사들이 백기환 목사를 필두로 탈퇴하여 세운 교단이다. 과거에는 여성목사 안수를 두고 통합과 대립한 적도 있으나 근본적인 신학 성향은 큰 차이가 없고, 1990년대 들어 통합측도 여성 목사 안수를 시작하면서 지금은 관계가 개선되고 교류도 활발히 이루어지는 상태. 산하에 [[온석대학원대학교]]를 두고있다. * 대한예수교장로회(피어선) : 1993년 피어선대학 동문들이 아서 T. 피어선 목사의 신학을 기리기 위해 탈퇴하여 세운 교단이다. 딱히 껄끄러운 문제로 갈라진게 아니다보니 예장 통합과 신학적 성향이 비슷하며 교류도 활발한 교단이다. 피어선대학은 [[평택대학교]]로 개칭한다. * 한국독립교회및선교단체연합회(KAICAM) : 1997년 장로회 헌법에 의한 교단 조직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의사 결정과정에 얽매이기 싫었던 자유교회 성향 목사들이 탈퇴하여 세운 [[초교파|독립교단]]이다. 원래 목사를 자체적으로 양성하지 않았던 연세대, 서울여대, 한남대, 전주대, 계명대, 김천대 등 예장 통합 소속 종합대학에 개설된 신학대학원과 인준하였다.[* 다만, 출범 당시부터 박조준 등 통합측 목사들뿐 아니라 합동측 목사인 김준곤 등도 함께 참여하였으며, 현재의 KAICAM은 통합측 뿐만 아니라 기장, 합동, 고신, 기감, 기성, 예성, 기침 등 다양한 교파와 교단 출신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