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항해시대 (문단 편집) === 쇠퇴(18세기) === 대항해시대는 수십 년에 걸친 탐험과 개척, 정복 끝에 유럽인들이 지구상의 거의 대부분의 문명들을 발견하여 더이상 새롭게 찾아나갈 곳이 없어지자 자연스레 끝나게 된다. 뒤이어는 내륙 탐험 및 정복의 역사가 주를 이룬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스페인의 [[콩키스타도르|정복자]]들에 의해 [[마야 문명]],[* 하지만 마야 문명의 멸망은 스페인의 탓이라기보다는 기후 변화 등 여러 요인의 비중이 더 크다.] [[잉카 제국]], [[아즈텍]]이 차례대로 멸망하고 중남미 아메리카는 [[브라질]]을 제외하고[* 브라질은 [[토르데시야스 조약]]에 따라 포르투갈령이 되었다.] 스페인의 지배를 받게 된다. 한편 영국이나 프랑스, 네덜란드 같은 후발주자들은 이미 이베리아 국가들이 선수친 [[중남미]][* 별개로 [[카리브]] 지역은 이후 영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영미권의 영향도 크게 받는다.]에서 눈을 돌려 [[북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 그리고 [[아프리카]] 등지로의 진출을 시도하는데, 이것이 현재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보어인]]과 [[영연방]] 회원국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미국]]의 기원이 된다. 대항해시대 중반인 [[17세기]] 무렵부터 유럽에서 먹고살 만한 나라들은 대부분 대양으로 진출하게 되었고, 너도나도 새로운 시장(사실상 [[식민지]])을 개척하고자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이때, 당시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흘러들어간 막대한 [[금]], [[은]]으로 인한 '''가격 혁명(Price revolution)이 발생했으며''',[* 신대륙으로부터 급격한 귀금속의 유입으로, 유럽에서 발생한 [[인플레이션|물가 급등 현상]]. 이를 통해 대량의 잉여자본의 형성이 가능해지고, 이에 따라 공업, 산업 및 금융업에서 발전이 촉진되었다. 또한 아메리카의 은은 아시아로부터 수입되는 물품 비용으로도 충당되었다.] 이로 인한 신흥 자본 세력의 대두, 봉건 세력의 몰락과 함께 유럽은 계몽시대, [[산업혁명]]을 거쳐 제국주의로 나아간다. 또한 앞서 말한 [[제국주의]]로의 발전과 연관되어서, 이 대항해시대는 유럽인들이 다른 세계, 문명에 비해 자신들이 더욱 발전했다는 우월감을 가지고, [[백인 우월주의]]와 서구 중심주의로 연결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한편 지리 분야로만 한정한다면 [[18세기]] 후반 이후에는 기존에 국왕으로부터 명령과 자금을 받는 대규모 원정 대신, 정부와 의회의 통제를 받는 '''근대적 의미의 탐험(Expedition)'''의 시대가 열렸으며, 정부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기도 했지만 이후로는 개인, 혹은 상인단이 꾸린 중소규모의 탐험대, 또는 정부나 의회의 지원을 받는 상업조직, 지리학회(Commercial Geography) 등이 이끄는 민간조직이 탐험대의 주역이 되었다. 정부에서 출자해 조직한 원정대도 이전처럼 대규모의 원정대를 꾸리기보다는 보다 현지사정에 밝은 협력자, [[선교사]]와 각 분야의 [[학자]]들을 앞세운 <탐험대>를 조직했다. 이들의 주요 성과는 대항해시대 이후로도 아직까지 미지의 영역으로 남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아프리카 대륙 내륙]], 중앙아시아, 오세아니아의 남은 도서지역, 그리고 [[극지방]]에 대해 새로운 지식을 주었지만, 이들 또한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제국주의의 첨병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게 되어 이들과 동반한 침략국가의 무력활동은 많은 부작용을 야기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