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항해시대 (문단 편집) === [[스페인]]의 경우 === 스페인은 포르투갈과 달리 서지중해를 접하고 있었고, 자연스레 당대의 이탈리아 반도 국가들과 더불어 지중해 해상무역권 쟁탈에 일찌감치 참여하고 있었다. 먼저 이를 주도한 것은 스페인의 전신인 [[아라곤 왕국]]이었는데, 아라곤은 먼저 발레아레스 제도를 점령하고 이를 발판으로 지중해 각지로 뻗어나가 1311년 [[아테네]] 공국을 접수하더니 1442년에는 [[시칠리아]]와 [[나폴리]] 왕국의 왕위까지 장악하여 지중해에 아라곤 해상국가를 완성시킨다. 아라곤 왕국은 이를 기반으로 [[베네치아]], [[제노바]]와 함께 지중해 3대 세력으로 거듭나려고 했다. 하지만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이스탄불|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제20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무너뜨리며]]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그 직후 아테네 공국까지 흡수하면서 상황이 매우 안 좋게 바뀌고 만다. 오스만 제국이 제국 내부를 통하는 모든 무역 경로에 대해 아라곤 왕국을 차단해버린 것. 이는 아라곤이 오스만의 팽창과정에서 어깃장을 놓으며 적대관계를 맺은 것에 대해, 오스만이 패권을 쥐게 된 후 이루어진 보복행위였다. 대항해시대와 관련하여 잘못 알려진 통념 중 하나인 '강성해진 오스만 제국이 유럽과 아시아의 교역을 차단해서 유럽이 대항해시대에 열을 올리게 됐다'는 부분은 사실 반만 맞는 것으로 정확히는 아라곤 왕국만을 차단했다. 모든 유럽세력의 무역을 차단'한 게 아니라 '현 스페인의 전신인 아라곤만 차단'했으며, 아라곤은 어쩔 수 없이 다른 무역 루트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이후 오스만 세력은 중부 지중해로 뻗어나가기 시작했고, 베네치아의 동지중해 식민지를 모조리 점령하면서[* 그리스 본토는 15세기 후반, 키프로스는 1571년, 크레타는 1669년에 오스만에게 정복되었다.] 유럽 지중해 국가들의 해상무역권은 완전 날아가 버렸다. 오스만에 적대적이던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까지 박살 난 이후에는 아예 지중해 해상 패권 자체가 오스만으로 넘어가버린 상황이었고, 오스만의 지원을 받는 [[바르바리 해적]]들까지 설치면서 무역은 더 어려워졌다. 아라곤과 [[카스티야]]의 국왕간 혼인에 따른 국가통합으로 탄생한 [[스페인]]으로서 이는 묵과할 수 없는 현실이었으나, 당시 어마무시한 패권을 가진 오스만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아라곤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해양 [[부르주아지]] 세력은 왕가에 지속적으로 빼앗긴 지중해를 되찾든가, 아니면 이를 대신할 새로운 무역 루트를 개척하게 도와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그 시점에 이미 포르투갈은 신항로를 통해 [[인도]]로 다가가는 중이어서 스페인의 상업 부르주아지들은 포르투갈에 뒤쳐질지 모른다는 조급함에 자신들도 이에 따라 신항로 개척을 해야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결국 스페인도 포르투갈의 뒤를 이어서 신항로 개척에 참여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