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덕종(고려) (문단 편집) ==== 외치 ==== 현종 대부터 점차 타국에 품계를 내리거나 책력의 반포, 조공 무역을 늘려가기 시작했는데 덕종 대부터 고려는 [[동북아시아]]의 강대국으로 명성이 퍼졌을 정도로 강성한 국력을 자랑하게 된다. 《[[고려사]]》 <덕종 세가>의 내용 절반은 타국이 조공하러 오는 것일 정도이다. 현종에게 책력을 받은 철리국(鐵利國)의 왕인 [[나사(철리국)|무나사]](武那沙)는 약오자(若吾者) 등을 보내 준마와 담비 가죽을 조공해 무역을 지속적으로 행하였으며, 무나사는 다시 사신을 보내 고려와 외교 관계를 이어가고자 했고 덕종은 하사품을 크게 주어 화답했다. [[요나라]]의 남부에 거주하던 해가(奚家) 민족, [[발해]] 유민들은 계속하여 고려로 이주하였다. [[울릉도]]의 성주(城主)는 아들 부어잉다랑(夫於仍多郞)을 보내 덕종에게 특산물을 조공했다. [[송나라|북송]]은 무역 상인편에 여러 외교 문서를 보내 간접적으로나마 무역과 외교 관계를 이어갔다. 서여진 200여 명이 북계 [[천리장성]]을 쌓는데 도움을 주자 그들의 관작을 높여주기도 했으며, 투항한 동여진 350호의 거주지를 동번으로 정하는 등 [[여진]]의 거처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동여진과 서여진의 영새대장군(寧塞大將軍), 장군(將軍) 등이 170여 명과 같이 와서 병기, 준마, 특산물을 조공했으며 장군 모이라(毛伊羅)는 현종의 선릉을 제후로서 참배했는데 다음 관작들은 전부 고려가 봉한 것이다.[* 덕종의 치세 동안 동여진의 정보(正甫), 보윤(甫尹), 정조(正朝), 원보(元甫), 원윤(元尹), 봉국대장군(奉國大將軍), 회화장군(懷化將軍) 등과 서여진의 대상(大相), 회화대장군(懷化大將軍), 귀덕장군(歸德將軍) 등이 총 620여 명을 이끌고 수 차례 입조(入朝)하였고, 덕종은 품계를 올려주며 직접 조공을 받았다.] 대상[* 4품 1등위.], 원보[* 4품 2등위.], 정보[* 5품.] 원윤[* 6품 1등위.], 정조[* 7품 1등위.], 보윤[* 8품.]은 고려의 향직 품계, 봉국대장군, 회화장군, 귀덕장군은 고려의 관작명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