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데바닷타 (문단 편집) == 데바닷타 교단의 교리 == 데바닷타가 주장한 오법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다. 다섯가지 계율은 전승마다 달라지는 경우도 많지만, 대체로 거주지, 걸식, 금육, 의복의 절제 등 의식주 전반에 대한 계율이다. * '''1'''. 봄∼여름, 8개월은 태양 아래 숲 속 나무등걸 밑이나 무덤 가에 앉아 있고, 겨울 4개월은 초가집에서 머문다. 촌락의 집에서 살아야지, 아란야[* 촌락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수행하기에 알맞은 조용한 곳이라는 뜻으로, 한마디로 절]에서 살지 않는다. (일부 불경에선 반대로 '아란야에서 산다'라고 적혀 있기도 하다.[* '파승사' 권11, '선견율비바사' 권13]) * 왜 촌락의 집에서 살고, 아란야에서 살지 않는가? 왜냐하면 촌락의 집은 시주(施主)가 [[보시]]한 것이기 때문에 만약 그곳에서 살지 않는다면 시주의 보시를 버리는 것과 같다. (혹은 큰 비용을 들여 지은 아란야에서 사는 것은 수행자로서 합당하지 않다.) * '''2'''. 모든 비구는 일체 신도들의 공양 초청에 응하지 않는다. 오직 [[탁발]](걸식)만 해서 먹도록 한다. * 왜 공양 초청에 응하지 않고 걸식하는가? 초청을 받으면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을 차별하게 되기 때문이다. * '''3'''. [[생선]]과 [[고기]]를 먹지 않는다. 기름기 있는 음식(유지방 포함, 특히 [[기(식용유)|버터]])을 먹지 않는다. * 왜 생선과 고기를 먹지 않는가? 왜냐하면 차마 중생들이 생명을 없애는 것을 내버려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왜 버터를 먹지 않는가? 왜냐하면 그 원료인 [[소]]젖을 송아지에게 먹이기 위해서이다.[* 반면 붓다(석가)는 비구(수행자)가 음식을 가리는 것이 더 큰 잘못이라고 보았다. 위의 탁발론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인 것. 그러면서 "자신을 위해 죽인 것을 보았거나, 들었거나, 의심이 가는 고기"를 제외한 (즉, 고기를 먹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고의로 살생을 저질러 얻은 고기)를 제외한 나머지는 먹어도 좋다고 설하였다. 게다가 붓다는 고행하던 시절에 [[우유]]를 혹은 우유를 넣고 만든 죽을 공양받아 마신 적도 있다. 불교에선 어린 스님에겐 영양과 건강을 위해 오히려 고기를 충분히 먹게하고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때 그것에 대해서 고해하더라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 '''4'''. 새 천으로 된 옷은 입지 않는다. 옷을 받을 때 옷감 그대로 꿰매어 입는다. * 왜 옷을 받을 때 옷감 그대로 꿰매어 입는가? 왜냐하면 사문 고타마[* 부처를 따르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 사문은 출가한 수행자를 가리키고 고타마는 부처의 성씨이다. 쉽게 말하면 "고타마 패거리"라는 뜻을 가진 비하적 표현.]는 옷을 받을 때 옷감을 찢는다. (즉 얻은 옷감을 찢은 다음 다시 꿰매어 승복으로 만든다.) 이 같은 짓은 옷 만드는 장인의 노고를 훼손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마땅히 원래 옷감 모양대로 꿰매야 한다. * '''5'''. 소금을 먹지 않는다. * 왜 소금을 먹지 않는가? 왜냐하면 소금 속에 먼지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의 소금에는 불순물이 많았다. 지금은 일부러 불순물이 든 소금을 먹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거의 무조건 하얗게 정제해야만 시장성이 있었다. 비슷한 예로 [[예수]]가 "빛과 소금이 되라"라고 비유를 할 때도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맛 잃은 소금|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마태오 복음서]]. [[마르코 복음서]], [[루카 복음서]]에도 부분 등장.)"라고 말한 것도 이런 불순물 함량이 높은 소금이 많았기 때문. 하지만 그렇다고 [[저나트륨혈증|먹지 않는다면]](...) 소금은 그야말로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성분이다.] 농담이 아니라 [[영양]]학적 관점으로 보면 [[영양실조]]로 죽기 딱 좋은 법도다.(…) 영양실조로 신도들이 전멸했다는 가설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식생활 관련 계율이 엄격한 걸로 유명한 [[자이나교]]만 해도 [[기(식용유)|버터]], 소금의 섭취에는 금기 사항이 없다. 자이나교 신도들은 또한 정기적으로 우유와 [[알팔파]](동남아 지역에서 자생하는 허브의 일종.[[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771338&cid=46694&categoryId=46694|참고]])를 먹어서 채식으로 결핍되기 쉬운 필수 영양소를 보충한다.] 게다가 소금 섭취 금지는 말도 안 되는데, 음식에 자연적으로 포함된 염분을 섭취하는 걸로 견디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소금은 지나친 것보다 모자랐을 때의 해악이 훨씬 크며 과일이나 야채 등에 자연적으로 함유된 나트륨 성분만으로는 성인 1일 권장량에는 택도 없다. 오죽하면 [[단식투쟁]]하는 사람들이 물 외에 유일하게 섭취하는 것이 바로 소금이다.--그냥 [[먼지]]도 핥지-- 이러한 데바닷타와 그 종단의 이야기는 [[근본주의]]란 것이 왜 해로운지, 그리고 [[석가모니]]가 왜 이를 불식시키려 노력했는지를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사례이다. 석가모니 생전에 풍속이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그 풍속을 유지하며 불법을 따르게 해달라고 하자 모두 허락하며 불법이 깨달음을 구속하는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고까지 한 일도 있다. 오히려 계율을 두고 논쟁이 일어난 것은 석가모니 사후의 일. 석가모니 [[본생담]][* 석가모니 부처가 석가여래 자신으로 환생하기 전에 거쳐왔던 전생들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석가모니의 전생에 맞서는 역할은 거의가 이 사람의 전생들이 맡고 있다. 하나만 꼽자면 [[대당서역기]]에 보면 [[현장]]이 전해 들은 것으로 석가여래가 처음 설법을 행했다는 바라나시국 [[사르나트|녹야원]](鹿野苑)의 이름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바라나시국에 사슴 사냥을 몹시 좋아하는 인간 왕, 각자 사슴 5백 마리씩 거느리는 사슴 왕 두 마리가 있었다. 사슴 왕 중 한 마리가 왕에게 요청해 사슴 무리에서 돌아가면서 하루에 한 마리씩 순번을 정해 왕에게 가서 목숨을 내놓는 것으로 왕에게 사슴 사냥을 줄여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그래봐야 3년 안에 전멸~~ 그러나 순번이 돌아온 암사슴 한 마리가 자신은 지금 임신 중이고 뱃속의 새끼만큼은 살리고 싶다며 가기 곤란하다고 하자 사슴 왕 두 마리 가운데 한 마리는 "그건 네 사정이고, 다른 죽은 사슴들은 뭐 목숨이 안 아까워서 안 갔냐? 네 순번이면 네 순번대로 나가야지. 그럼 지금까지 죽은 사슴들은 어쩌라고. 또 네가 이제 와서 안 가면 누가 대신 갈 건데?"라며 암사슴을 욕했고[* 아동용 판본에서는 순화되어 "물론 새끼를 가진 네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슴들은 모두가 기꺼이 자신들의 순번에 따랐으니 예외를 두기에는 정말 곤란하구나."라고 난처해하며 말한다.], 암사슴은 (처음 왕에게 사슴 한 마리씩을 바치겠다고 요청했던) 다른 사슴 왕에게 자신의 사정을 호소했다. 그 사슴 왕은 "그래 네가 순번이기는 해도 네 뱃속의 새끼는 무슨 죄겠냐." 하며 자신이 암사슴을 대신해 가겠다고 나섰다. 사슴 왕이 대신 오게 된 사정을 들은 왕은 지금까지의 자신의 살생을 뉘우치며 다시는 사냥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 임신한 암사슴에게 윽박질렀던 사슴 왕이 데바닷타의 전생이고 암사슴 대신 자신이 죽겠다며 자원했던 사슴 왕은 석가여래의 전생이었다는 것.[* 다만 바로 직전의 환생인지는 의문, 추측상 바로 직전의 전생이라는 설정은 아닐 것이다. 그도 그럴게 축생에서 인간, 그것도 왕족 신분으로 환생하는건 무지 어려운 일이기 때문.] 어떻게 보면 간단한 이야기로 둘의 차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제일 나쁜 건 인간 왕이긴 하지만(...) [[삼국유사]]의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의 설화와도 유사한 면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