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데브시르메 (문단 편집) == 도입 == 본래 황제가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군대인 [[예니체리]]를 모집하는 제도에서 출발했다. 예니체리 자체는 2대 황제인 [[오르한]]이나 3대인 [[무라드 1세]] 때 창설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처음에는 전쟁 포로 중에서 뽑았는데, 무라드 1세 때 이르러 기독교도 소년 중에서 뽑아다 훈련하는 것으로 정해진다. 이후 기독교도 소년들 가운데 징집하여 황제의 친위군을 육성한다는 방법이 상당히 효과가 있다고 판단한 [[무라드 2세]]는 이 제도로 [[관료]]들도 뽑도록 확장한다. 하지만 무라드 본인부터 투르크계인 재상 찬다를르 할릴 파샤를 총애하고 있었기에 당대에 데브시르메 출신자가 정권을 장악한 것은 아니었고, 정치적인 변동은 무라드 2세의 아들로 할릴 파샤를 처형함으로써 투르크계 세력을 크게 약화시키고 데브시르메로 뽑힌 자아노스 파샤를 후임 재상으로 임명한 [[메흐메트 2세]] 때 이루어진다.[* 하지만 메흐메트 2세는 투르크계 세력을 완전히 몰락시키는 데에까지 이르지는 않고, 데브시르메 출신자들을 일종의 여당으로 만들고 투르크계 세력을 야당으로 존속시켜 서로 충성을 경쟁하게 했다. 애초에 데브시르메 제도가 만들어진 것 자체가 황제가 투르크계 세력을 견제할 수단이 딱히 없었기 때문인데, 이들을 완전히 축출하고 데브시르메 세력만 남겼다가는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되풀이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 이러한 균형은 데브시르메 출신자들의 세력이 비대해지는 것을 딱히 견제하지 않은 [[쉴레이만 1세]] 때 무너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