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델포이 (문단 편집) === 델포이의 신탁 === [[파일:0C3F0A06-63B2-42C4-A898-4929CC0DE75F.jpg|width=54%]]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델포이는 무엇보다 신탁으로 유명했다. 폴리스에서 온 수많은 왕과 현자들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신들의 뜻을 알기 위해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으로 몰려들었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은 1년 중 가장 따뜻한 9개월가량만 열렸다고 한다.[* 디오니소스는 아폴론과 마찬가지로 예언과 치유의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디오니소스는 아폴론과 함께 델포이 신앙에서 중요한 신격이었다. 3월부터 10월까지 델포이 신전에는 아폴론과 그 추종자들이 머물렀고, 아폴론이 델포이에서 잠시 떠나는 11월부터 2월까지는 디오니소스와 그 추종자들이 머물렀다고 한다.] 신탁도 매번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닌지라 아폴론 신전이 열린 동안 신탁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무척 붐볐다고 한다. 최초에는 매년 1회씩 신탁을 받았으나 훗날엔 매달 한 번씩 신탁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신탁을 받기 위해선 도시국가의 대표 개인 상관없이 패리노스[* 보통 금으로 바쳤다.]라는 세금을 내야 했다. 신탁을 받는 과정 또한 무척이나 까다로웠다. 먼저 성역에 들어가기 전에 카스텔리아 샘[* 지금도 물이 샘솟는다.]에서 몸을 깨끗하게 씻어야만 했다. 그다음 패리노스를 지불하고 양 같은 희생 제물을 바친 뒤 예언 받고 싶은 사항을 석판 따위에 적어서 신관에게 건냈다. 이렇다 보니 예언은 아무나 의뢰할 수 없었고 보통 국가 차원에서 대표자를 보내어 나라의 중대한 결정사항을 묻는 것이 대부분이였다. 그 외에도 왕가에서 예언을 의뢰하는 일이 흔했다. 질문과 그에 대한 신탁 내용이 기록으로 좀 남아있는데, 초기에는 주로 국가적인 질문들이었고 답변도 상세하였으나 리디아의 신탁을 기점으로 점차 개인적인 질문과 두루뭉술한 답변으로 변해갔다고 한다. 아폴론 신전은 도리스 양식으로 건축했는데 전실ㆍ후실ㆍ신실로 총 3개 방으로 나뉘었다. 신실의 제일 안쪽에 아폴론 신의 여사제이자 예언자인 피티아[* 신화에 따르면 아폴론이 죽인 괴물 뱀 피톤의 아내의 이름이 바로 피티아였다고 한다. 아폴론은 피톤의 곁에서 떠는 피티아에게 자비를 배풀어 인간으로 만들고 자기 신전의 여사제로 삼았다고 한다]가 다리가 3개 달린 삼발이 솥 위에 앉아 신탁을 했다고 한다.[* 그리스어로 델피키 트리포데스(Δελφικοί τρίποδες)라는 물건으로 현재 델포이 박물관이 보관 중이다.] 현재는 크게 파괴되어 기둥 3개만 남았다. 신전 터 앞에는 높이 3 m짜리 제단이 있는데 페르시아로부터 해방된 [[히오스 섬|히오스]]섬 주민들이 세웠다. 제단 앞에는 거대한 아폴론 신상이 있었던 대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예언이 시작되는 신실 안쪽은 아디톤(Άδυτον)[* '출입금지'라는 의미.]이라 하여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었다.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피티아 여사제, 단 한 사람뿐이었다.피티아가 신탁의 결과를 받아 말하면 아디톤 밖에서 신관[* 델포이의 신관 중 가장 유명한 인물로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저자 [[플루타르코스]]가 있다.]이 듣고 받아 적어 해석한 뒤 질문을 의뢰한 인물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피티아는 50대 즈음 여자가 선출되어 맡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어린 소녀가 맡았는데 트라키아인 한 명이 그 소녀를 겁간하는 크나큰 불경을 저지른 뒤, 노인이 예언자 일을 맡도록 하되 옛 기원을 존중해서 처녀의 복장을 입도록 했다는 전승이 있다. 피티아의 예언은 아주 난해하고 애매하기 짝이 없었다고 한다. 얼마나 애매했는지는 [[키루스 2세#s-3.3]] 문서로. 영어단어 중에도 Delphic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애매하다.'는 뜻이다. 12세기 [[동로마]] 역사가 게오르기오스 케드레노스(Γεώργιος Κεδρηνός)에 따르면, 4세기 중엽 반그리스도교 정책을 시행한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가 362년에 개인 주치의 오리바시우스(Oribasius)를 델포이로 보내어 아폴로 신의 뜻을 물어보고자 했다. 오리바시우스가 찾아갔을 때 이미 델포이는 많이 쇠락한 뒤였는데, 그가 피티아에게 받았던 신탁이 델포이의 '마지막 신탁'이었다고 한다. >Είπατε τω βασιλεί χαμαί πέσε δαίδαλος αυλά. Ουκέτι Φοίβος έχει καλύβην, ου μάντιδα δάφνιν, ου παγάν λαλέουσαν, απέσβετο και λάλον ύδωρ. >[[다이달로스]] 궁전[* 여기서 '다이달로스 궁전'이란 [[다이달로스]] 같은 뛰어난 장인이 만든 장엄하고 멋진 궁전이란 뜻이다. 실제로 다이달로스가 지었다거나 했다는 말은 아니다.]이 땅으로 추락하였다고 황제에게 전하라. 포이보스(아폴론의 별칭)는 더 이상 자기 방도, 점술의 월계수도, 예언의 샘(카스탈리아 샘)도 없노라. 재잘거리는 물 또한 이미 조용해졌느니라. 케드레노스는 율리아누스 황제로부터 거의 700년 뒤 사람이므로, 율리아누스가 (케드레노스가 기록한 바대로) 정말로 델포이에서 저런 내용으로 신탁을 받았는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로마 제국에서 떠오르는 신흥종교 그리스도교가 델포이 신전, 더 나아가서는 그리스-로마의 전통종교에 맞서 강한 긴장상태에 있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393년 [[테오도시우스 1세]]가 그리스도교를 로마의 국교로 정한 뒤에 델포이 신전은 확정적으로 폐쇄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