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무기) (문단 편집) == 대부분의 국가에서 도를 더 많이 사용하는 이유 == [[서양]]에서 중세~근대 직전 까지는 양날 검을 주로 사용했던 데 비해서 [[동양]]에서는 외날 도를 주로 사용하였다. 특히 [[일본]]의 [[일본도]]나 [[중국]]의 [[대도(무기)|대도]], [[한국]]의 [[환도(무기)|환도]] 등이 동양에서 사용된 도의 대표적인 사례들로 꼽힌다. 이는 역사적 경위와도 관련이 있었는데, 아직 기술이 미숙하던 시절에는 구조가 복잡하고 내구도가 떨어지는 양날 검보다는 그보다 더 단순하고 견고한 외날 도가 선호되었었기 때문이다. 양날검이 절단 성능이 좋으려면 칼날 두께도 얇고 검폭도 넓고 양날 모두 예리해야 하지만, 외날도는 칼등의 두께를 유지하여 칼날의 무게를 유지하며 내구도를 확보하면서도 전체적 형상 덕분에 칼날의 날각이 예리한 편이 되기 때문에 절단력이 상당했다. 충분히 기술력이 생긴 이후에도 중국의 군용 도검은 안모도(雁毛刀)[* 찌르기와 베기에 모두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설계된 외날 [[도검]]. 주로 [[명나라]] 시대에 사용되었다. 안모도를 다루는 기법은 양날검의 검술과 외날도의 검술 양자에 걸쳐 있었다고 한다.]나 유엽도(柳葉刀)[* 베기에 중점을 둔 외날 [[도검]]으로, 전통적인 중국도 중에서는 가장 흔히 쓰이던 칼로서 보병도로서도 기병도로서도 널리 쓰였기에 여러 [[중국무술|중국 무술]] 유파에서 사용법을 가르쳤던 칼이기도 하다. [[대도(무기)|대도]]보다는 작은 칼이지만 그래도 역시 [[장검]]이었고, 대도와 마찬가지로 무게중심이 칼날의 말단부로 쏠려 베는 위력을 크게 증가시키는 구조였다. 대도와 다른 점은 대도가 무거운 양손검인데 유엽도는 더 가벼운 한손검이라는 것. 여담으로 유엽도의 설계가 무게중심이 절묘하게 잡혀 검술을 할 경우 손목을 이용하여 쉽게 위력을 내기 쉬워서 대도보다 더 실전적인 칼이라는 주장도 있다.] 등의 외날도가 주로 쓰였다. 이런 경향은 근현대에도 이어져 [[국민혁명군]]의 [[군도(도검)|군도]]인 [[대도(무기)|대도]](大刀)에 계승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중국의 [[이웃나라]]인 [[일본]]과 [[한국]]으로도 전파되었다. 특히 일본에서 더욱 극단화된 형태로 나타나 세계적으로도 동양식 외날도의 아이콘으로 통용되는 [[일본도]]가 나왔고, 근현대에도 영향력이 이어져 [[일본군]]의 군도인 [[일본군도]]가 제작되었다. 한국 역시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서 [[환도(무기)|환도]]를 군용 도검으로 채용하게 되는 등 양날검보다는 외날도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경위로 [[동양]]에서는 전투용 [[도검]]으로 주로 외날 도를 사용했다. 양날 검은 민간의 호신용 도검으로 사용되거나 실전을 자주 치르지 않는 고위직의 위엄을 살리기 위한 의장용 도검, 또는 주술적 의미를 가진 장신구적 도검으로 사용되었다. 그렇다고 물론 그렇다고 동양에서 양날검을 실전용으로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고, 대체로 경향성이 그렇다는 것. 서양 역시 근대로 갈수록 몽골과 중동의 기병도를 수입하여 곡도로 넘어갔다. [[고대]]의 [[글라디우스]]·[[스파타]]나 [[중세]]의 [[롱소드]] 등으로 대표되는 양날검을 주로 사용했던 [[서양]]에서도 [[메서]]·[[세이버]]·[[커틀러스]]·[[펄션]]·[[색스(도검)|색스]]·[[백소드]] 등 외날도를 적지 않게 썼고, 특히 서양의 [[기병]]은 [[근세]] 이후 서양식 외날도의 아이콘처럼 통하는 세이버를 주력으로 사용했다. 그 영향으로 세이버는 도검이 [[무기]]의 주류에서 물러나게 된 오늘날에도 세계 각국의 [[의장대]]에서 의장용 [[군도(도검)|군도]]로서 널리 채용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