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겸(삼국지) (문단 편집) === 초기 생애 ===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현 내에서 도겸이 막돼먹은 놈이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14살이 되어서도 병정놀이를 해서 동네 아이들이 도겸을 따랐다. 창오 태수를 지낸 적이 있던 동향 출신의 [[감공#s-2]]이 도겸의 용모를 보고 비범하다고 여겨 이야기를 나눈 후에 너무나도 기뿐 나머지 도겸에게 딸을 주었 다고 한다. 감공의 부인이 이를 알고 따지자 감공은 도겸이 큰 인물이 될 것이라 하면서 딸을 도겸에게 내어줬다. 젊어서는 유생으로 주군에 출사해 효렴으로 천거되어 상서랑에 임명되었으며, 옮겨서 서현 현령을 지내는 등 각지의 지방 장관을 맡았다. 이후 무재로 천거되었다가 여현령, 유주 자사 등을 역임했다. 오서에 따르면 같은 군 출신의 선배인 아버지의 친구이자 여강군 태수인 장반은 도겸을 특별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도겸은 장반에게 고개 숙이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는데, 무리와 더불어 성으로 돌아와서 공무를 이유로 장반을 만나고 자리가 파한 이후에 장반은 항상 사사로이 도겸을 불러들여 더불어 연회를 즐기고자 하였지만 도겸은 혹 거절하여 남지 않았다. 장반이 항상 춤을 추라고 부탁하자 도겸은 춤추려 하지 않았다가 끈질긴 강요로 겨우 춤을 추면서도 억지로 추는 모습이 역력해 춤을 추면서 도는 동작을 하지 않았다.[* [[삼국지집해]]를 보면 '후한서 채옹전에 이르길 삭방으로 유배되어 사면받아 돌아올 때에 (오원) 태수 왕지가 전송했는데 일어나 춤을 추고 채옹으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였다. 채옹은 답무를 추지 않았으므로 왕지가 증오하였다.' 이는 주인과 손님이 즐겁게 노는 일반적인 태도였다. 또 '한서 주에 이르길 장사정왕이 조정에 오자 천자가 조서를 내려 장수를 축원하고 춤을 추도록 하였다. 정왕은 다만 긴소매속의 팔을 약간 들어 움직였을 뿐이므로 좌우에서 춤추는 기술이 서툴다고 비웃었다. 황제가 기괴하게 여겨 물으니 정왕이 대답하길 신은 나라가 작고 땅이 협소하니 족히 돌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는 곧 춤출 때 고의로 돌지 않아서 자신의 뜻을 보인 것이니 도겸의 이 일과 같은것이다. 두가지 기록을 참고해보면 장반이 도겸에게 춤을 시켰다는 것은 당시의 관습에 비추어 봤을 때에 장반이 먼저 추고 도겸에게 시켰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런데 도겸이 그걸 채옹같이 거부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무례한 것인데 왜 몸을 돌리지 않느냐는 질문에 다른 사람을 이길까봐 라고 한 것은 내가 몸까지 돌리면 장반, 당신을 이길지도 몰라 돌리지 않았다고 대답한것이므로 장반을 대놓고 모욕한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로부터 장반이 불쾌하게 여겨 끝내 두 사람의 사이가 소원해지게 되었다. 도겸은 관리로 있으면서 청백하여 꼬투리 잡을 게 없었는데 영성(靈星)에 제사지내고 남은 돈 500전이 있어 (장반이) 이를 장물로 삼고자 하니[* [[삼국지집해]]를 보면 "한서에 무릇 장(贓)이라는 글자는 더불어 장(臧)이라고도 썼다.또한 하작이 말하길 '장(臧)이라는 글자 아래에 혹시 핵(劾)이라는 글자가 있었는지 의심된다. 집해의 견해를 따라 장반이 도겸을 미워하여 남은 돈을 고의로 도겸이 장물로 사용하기 위한것으로 덮어씌우고자 했다 보인다.] 도겸은 관직을 버리고 떠났다. 의랑을 지내다가 후한의 서쪽 변경에서 군무 경력을 쌓았다. 도겸은 강족을 토벌하러 서쪽으로 향하던 정서장군 [[황보숭]]에게 발탁되어 양무도위에 임명하고 황보숭과 함께 강족을 크게 무찔렀다. [[변장(삼국지)|변장]] · [[한수(삼국지)|한수]]의 난 때 토벌군 대장인 사공 행 거기장군 [[장온]]의 참군사[* 참고로 [[손견]]도 똑같은 직책에 있었다.]로 종군했다. 장온은 도겸을 불러 후히 대우했다. 도겸은 장온에게 속으로 불복하였으나, 술자리와 같은 자신의 편에 있는 사람들이 모인 사적인 자리에서는 되려 장온을 욕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안 장온은 분노하여 도겸을 변방으로 유배보냈으나, 어떤 사람이 장온에게 "도공조는 본래 재략으로 공에게 중용받았는데 하루 아침에 취해서 한 실수를 가지고 관용을 받지 못하고 멀리 불모지에 버려져 두터운 덕이 끝까지 가지 못한다면 사방의 인사들이 어찌 기대하고 의지하겠습니까! 원한의 감정을 풀고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돌아가 멀리서도 아름다운 덕이 들리게 하는 것만 못합니다."라고 도겸을 풀어줄 것을 진지하게 간하고 한편으로는 도겸에게 "족하께서 가벼이 3공을 모욕하였으니 스스로 자기의 죄를 지은 것으로 지금 용서를 받았으니 덕이 이보다 두터운 것이 없습니다. 응당 뜻을 내리고 말을 공손하게 하여 사과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라고 망할 놈의 성질머리 좀 죽이고 장온에게 사죄하라고 한다. 도겸은 알겠다고 하였다. 그는 "도공조가 지금 깊이 스스로의 잘못을 탓하고 바꾸고자 합니다. 천자에게 가서 사죄하는 예가 끝난 다음 반드시 공에게 올 것 입니다. 공께서는 응당 만나보고 그 뜻을 위로하셔야 좋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결국 두 사람은 다시 화해했으며 도겸은 유배지로 가던 도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당시에 장온이 공궐의 문에서 도겸을 만났는데 도겸이 장온을 바라보고 말하길 "도겸은 스스로 조정에 사죄하러 온 것이지 어찌 공을 위해 왔겠습니까?"장온이 말하길 "도공조의 어리석은 병이 아직 제거되지 않았구나" 하고는 마침내 도겸에 대한 장온의 대우는 처음과 같았다. 이는 도겸의 인격이 좋지 않았다는 증거기도 하지만 거기장군이나 되는이가 욕한 후배를 너그러이 용서했을 정도로 도겸의 능력이 출중했을 공산이 크다는 얘기도 된다. 이때까지 그가 쌓은 군무경력은 [[손견]] 다음으로 가는 수준으로, 당대의 그는 주변으로부터 제법 기대를 받는 유망주였던 것 같다. 두 인물 모두 강동 출신이며, 서북변에서 벌어진 군사적 활동에 참여한 것도 그들이 가진 공통점이다. 다만 도겸이 손견보다 더 나이가 많았기 때문인지 도겸의 민정경력은 손견에 비해 더 오래되었고 그의 관위도 손견보다 높았다.[* 같이 장온의 참군사가 되기 직전 손견은 군승 · 별부사마였고 도겸은 태수였다.][* [[공손찬]]과도 유사한 커리어를 쌓았다. (공손찬)서자출신>태수의 눈에 띄어 사위가 됨>선비족 토벌 (도겸)아버지가 일찍 사망>전직 태수의 눈에 띄어 사위가 됨>강족 토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