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겸(삼국지) (문단 편집) === 조조와의 대립, 죽음 === 원술과 원소가 사이가 벌어지자, 공손찬과 동맹을 맺어 공손찬 수하의 [[유비]], [[전해]], [[선경]]과 함께 포위망을 형성[* 도겸은 연주 동군 발간현에 주둔하였고, 상술된 세 인물도 원소와 조조 주변에 주둔하였다.]하여 원소를 압박했으나 이들은 모두 원소와 조조에게 격파당했다. [[천자]]를 자칭하던 [[궐선]]이라는 [[도적]]과 손을 잡아 함께 약탈을 일삼다가 그를 배신해서 죽이고 군대를 흡수했다. 도겸은 천자를 자칭한 역적과 어울렸던 반역도당이면서도 동시에 동료를 배반한 저열한 배신자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도겸이 역적을 속여 넘김으로써 별다른 피해 없이 난을 진압한 탁월한 지략가라고도 할 수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공손찬과 협력하여 [[조조]]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다가 조숭을 죽게 한 것이 원인이 되어 조조에게 공격당해 연전연패했다. 한때는 고향 단양으로 도주하려고 했을 정도. 전해와 유비가 원군으로 오고 [[여포]]가 조조의 근거지인 연주에서 반란을 일으켜 조조가 퇴각하자, 사망하기 직전에 도움을 주기 위해 객장으로 와 있던 유비에게 서주를 양도했다. 향년 63세. 도겸이 죽자 장소 등이 도겸을 위해 애도하는 글을 지어주었다. >아아, 사군(使君)이여. 그대(君侯)는 장군(將軍)으로 뛰어난 덕행을 지니고, 그에 마땅한 문과 무를 지녔으며, 풍체는 족히 강직한 데다, 온화하고 어짊을 지켜, 서현(舒縣)과 노현(盧縣)에는 백성에게 인애(仁愛)를 남겼다. > >유주에서 목牧직을 수행하고 서주의 목牧이 되어도 《감당(甘棠)》처럼 공정하였으니, 아득히 먼 이(夷), 맥(貊)마저 그대(侯)에 힘입어 잠잠해졌다. > >어지러이 요사스러운 도적들이 일어나고, 이 도적들은 그대(侯)를 안녕치 못하게 하였으나 오직 황제의 치적만을 생각하고, 작명(爵命)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목(牧) 또한 후(侯)가 되니 율양(溧陽)을 봉토로 받고, 마침내 상장(上將)에 올라 안동(安東)의 호를 받게 되니 장차 세상의 어지러움을 평정하고 사직(社稷)을 숭봉하였다. > >천수가 영원치는 않으나 갑자기 조훙(殂薨, 죽음)하였으니 믿을 곳을 잃어 백성이 곤궁함을 알게 되었다. > >더욱이(혹은 일찍이) 열흘도 되지 않아 오군(五郡)이 무너져 내림에 애닮픈 우리 백성들은 장차 누구에게 의지할 것인가? > >추사하노니 슬퍼 하늘을 우러러 울부짖네. 아아! 슬프도다! >---- >장소의 애도하는 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