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교 (문단 편집) ==== [[송나라]] 도교의 부흥과 [[전진도]]의 등장 ==== 수당 시대 이후 송, 원 대에는 도교가 크게 부흥하였고 내단론이 계속해서 발전하여 도교의 주류 이론으로 완전히 자리잡아 발전을 거듭했다. [[송나라]] 대에는 '''흥[[도]]억불 정책으로 인해 [[모산파]]와 [[화산파]], 천사도가 크게 흥하였고''' 당시의 유명한 도사 진단은 전통적인 도가 학설을 중심으로 유가와 불가의 사상을 두루 융합하여 체계적인 내단 이론을 만들었으며, 특히 [[주역]]을 깊이 연구하여 도가의 문화에 유가의 사상을 흡수하였다. 또한, [[남송]] 대에 [[왕중양]]은 [[전진도]](全眞道)를 창시하였다. 전진도는 유불도의 삼교합일을 주장하고 '[[도덕경]]', '[[반야심경]]', '효경'을 필수 경전으로 삼았는데, 처차식과 부귀공명을 버리고 육식이나 비린 것을 먹지 않으면서 내단을 연단하여 고통스러운 유한한 세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진도는 이전의 도교에서 주장한 '''육신의 불사를 부정하고 단지 양신(陽神)만이 불사한다고 주장'''하여 부록[* 부록파에서 사용하는, [[부적]]이나 신기(神器).]을 사용하지 않고 내단의 수련만을 중시하였다. 이후 [[명나라]] 대에 이르러 전진도는 쇠락하였다가 [[청나라]] 대에 잠깐 중흥하였다. [[금나라]] 초 북방에서 소포진이 창시한 태일교는 부록을 중시하고 기도를 통해 병을 고치고자 했으며, 정명도는 특이하게도 도교의 정명, 불교의 대승, 유가의 충서 등 삼교의 세 가르침은 길은 다르지만 결국엔 한 곳으로 귀착된다 하여 '''충효를 실천하고 마음을 맑게 비우면 신과 통하지 않아도 득도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원나라]] 때 숭도 정책은 사라지지 않아 용호파, 각조파, 모산파의 삼산부록파[* 三山符籙派, 모산파를 보면 알겠지만 도교의 부록파를 계승하여 그 쪽 계열로 가장 융성하던 세 교파다.]와 전진도, 태일교, 진대도가 일어났으며 여러 유파들이 있었으나 결국 수 많은 부록파들과 천사도를 합하여 만들어진 '정일도'와 '전진도'로 나누어 흡수되어 천하가 양대 도파로 정리되었고 그러한 분위기 속에 내단 이론도 또한 양호한 발전을 이루었다. [[파일:우당산 중국.jpg]] 무당산에 [[영락제]]가 세운 금전. 본래 건물 전체가 도금되어 있었다고 한다. 명 대에는 명 태조 [[주원장]]부터 도교를 숭상하였으며, 랍탑도인 [[장삼봉]]이 [[무당산]]에 [[무당파]]를 창립하였다. 장삼봉은 전진의 도사였다가 [[종남산]]에서 내단을 만드는 비결을 얻고 무당산에서 수련하였다. 그는 청정한 마음으로 내단을 수련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그 과정에서 '무武'를 강조했다. 그래서 장삼풍은 무당권법을 창안했으며 육합신권을 수련하여 내가권법(內家拳法)이라고 하였는데 이것들은 수 많은 도교의 이론과 내단 수련법을 무술에 접목한 것이었다. 이후 무당내가권은 크게 발전하여 [[형의권]], [[팔괘장]], [[태극권]]이 만들어지고 이후 수 많은 무술과 유파가 발생하여 그 유명한 [[중국권법]]이 형성되었다[[카더라]]. 사실은 장삼봉은 시대별로 같은 이름이 여럿 나오는 불분명한 인물이며, 장삼봉과 무당산은 [[명나라]]대 정치적 목적으로 국가에서 띄워준 케이스다. 또한 중국무술 운운은 완벽한 후대의 날조다. [[소림권]]이 [[달마]]에게 유래했다는둥 XX 전통무술은 고구려/화랑이 익히던 호국무술이라는둥, 기원을 과거로 잡을수록 권위가 선다는 착각에서 비롯한 것. 실제 태극권은 명말 진왕정, 형의권은 명말 희제가, 팔괘장은 [[청나라]]말 [[동해천]]을 시조로 한다. 내가삼권은 근대에 탄생한만큼 각자 계보를 정확히 밝히고 있으며,[* 내가삼권의 정식 계승자들은 우리나라에도 있다. 함부로 무당산 운운하다간 고소크리 당한다.] 무당산 쪽에서 멋대로 장삼봉 이름을 팔아 사기치는 것이다.~~전격 대륙의 상술~~ 그러나 명나라는 공식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유교]]를 나라의 근본 이념으로 삼는 나라였기에 비록 황족의 후원이 있기는 했으나 국가운영의 중심사상은 도교가 아닌 유교에 두고 있었고, 불교와 도교를 반반씩 중심 사상으로 잡던 당송 시대와 달리 도교의 힘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때부터 국가 중심의 관방도교는 점차 몰락하기 시작하였다. 반대로 민간신앙에서는 송, 원 시기부터 점차 대두되기 시작한 민간도교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옥황상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신들이 하부에 위치하는 도교의 신화세계도 이 시기를 거치며 완성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