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교 (문단 편집) === 도가와의 차이? === [[도가]]와 도교는 엄밀히 따지면 전혀 별개의 개념이라는 주장들이 있다. '''도가는 [[노자]] 같은 사상가에 의해 나타난 철학사상의 하나지만, 도교는 [[장각]], [[장릉]] 같은 교주에 의해 확립된 종교들을 출발점으로 본다.''' 도교가 종교로서 발전하면서 도가사상 등을 끌어들였지만 사상적 지향점은 크게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가와 도교는 그렇게 엄밀하게 구분되는 개념도 아닐 수 있다. 우선 도가=철학, 도교=종교로 보는 관점부터가 문제가 있다. 과연 철학과 종교가 그렇게 엄밀히 구분되는 개념인가? 그것도 동아시아의 맥락에서? 아니, 시간적으로만 봐도 이 때는 고대다. 수학 과학 연구하던 [[피타고라스 학파]]도 종교적 특색[* 지켜야 할 계율이나 윤회설같은 세계관이 있었다.]을 지니고 있었던 시절이다. 당장 불교만 보더라도 불교 교리를 철학이라고 말하고, 그 외의 불교 의례를 종교라고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도교 역시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철학/종교의 이분법에 따라 사고하는 결과로 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덤으로 도교가 그리 많이 연구되지 않은 이유도 있다.) 하지만 노자/장자의 사상은 애초에 서로 지향점이 다르고[* 쉽게 말해 노자와 장자의 사유 차이는 [[형이상학]]vs[[실존주의]], [[국가주의]]vs[[아나키즘]]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지경이다.], 노/장이라는 범주를 억지로 묶어 만든 "도가 철학"의 지향점 역시 신비주의적 수양론이나 영생, 불멸에 대한 의지와는 전혀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노자]]에 대한 주석서를 집필한 사람들 중에는 물론 도교 사상에 빠진 신비주의자들도 있지만, 그 이전에 [[법가]]로 흔히 분류되는 [[한비자]]도 있다는 것에 주목하자. 한비자는 노자의 텍스트 내에 나타난 통치술에 대한 비유를 상당히 정확히 꿰뚫어보았으며, 영속적이고 안정적인 통치에는 무위(無爲)의 도(道)를 따르는 술책으로 민(民)이 자발적으로 복종하도록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노자 주해서를 통해 지적했다.[* 만약 노자의 "소국과민" 이나 "병기불상지기" 등의 문장에 혹해서 "노자가 평화롭고 자연주의적인 소규모 공동체, 국가 없는 사회를 꿈꿨구나"라고 생각하면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어찌보면 당신도 노자의 통치술에 낚인거다. 노자의 통치술은 민중이 이렇게 생각하게끔 통치자가 도에 따르는 교묘한 술수를 써서 백성의 복종을 받아내야 한다고 역설하기 때문이다.][* 단 이는 한비자의 견해이지 본래 뜻이 그렇다는 의미는 아니다. 도덕경은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서 아나키즘부터 전체주의까지 극단적으로 나뉜다.] 즉, 노자의 사상은 외형적으로나 종교적인 사상으로 보이지, 이러한 외형적 비유를 통해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국가 지배 체제를 제안한 엄연한 정치철학이다. 그리고 [[장자]]의 경우 일단 [[노자]]와도 다른 노선을 걷는데, 장자는 노자가 말하는 도(道)와 같은 초월적, 형이상학적 관념의 존재 자체를 거부했으며, 또한 이러한 관념에 따르는 [[아나키즘|국가나 기타 지배 체제 자체를 혐오]]했다. "어리석은 자(愚者)들이 꿈(夢)을 꾸면서 군왕이시어!(君乎), 종놈아!(牧乎)라고 외치는데, 정말로 고루하다!(固哉)"는 그의 말을 통해, 그가 어리석은 꿈이라 지적한 것이 지배자-피지배자가 구분되는 국가 체제라는 것이 명백해지며, [[호접지몽]] 등을 통해 그가 그토록 깨어나라고 강조한 꿈 역시 [[국가주의]]적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재차 확인 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국가 체제를 피해 도교적으로 혼자 영생을 누리거나 산 속에 은거하는 길을 택했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 도교에서 말하는 "양생"이 어쩌고 하는 신비주의적 목적 역시 국가가 내세우는 통치 이념과 다름없는 헛소리라는 것을 장자 본인이 못박고 있기 때문이다. 도교 수행자처럼 혼자 영생을 누리겠다는 목적으로 산 속에서 70년을 신선처럼 산 노인이 하루 아침에 호랑이에게 잡아먹혔다는 우화가 괜히 장자에 수록된 것이 아니다. 장자의 수양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물(物)과 통(通)하라는 이야기는 [[국가]], [[이념]] 등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며 세상의 모든 개체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라는 이야기지, 절대 자연 속에 틀어박혀서 신선놀음을 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물론 전 문단의 의견 역시 특정한 경향의 의견에 불과할 뿐,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도가철학을 아나키즘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신비주의적인 도교에 결코 부정적인 것만도 아니다. 애초에 아나키스트 중에 반종교적 정서를 지닌 사람들도 있지만 영성(Sprituality)이라는 화두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많다. 그리고 요즈음의 반종교적 정서들에 좌파들이 경계심을 가지는 추세인지라...] 자세한 것은 스스로 공부해 보고 판단하도록 하자. 2000년대 기준으로 도가와 도교를 분리해 놓고 보자는 주장은 주로 일본 학계쪽에서 보는 시각이다. 반면 원조 중국 학계에서는 도가와 도교의 연결성을 강조하는 쪽에 속한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한국의 도교 문화 - 행복으로 가는 길" 도록에 수록된 논문 참조.[* 요새 중국철학이나 불교철학 전공자들 사이에는 동양의 [[신비주의]] 전통을 아예 무시하며, 동양철학의 실용적, 정치철학적 모습만을 크게 강조하기도 하고, 과학적 측면을 강조하면서 형이상학적, 오컬트적 서양철학 및 종교를 까는 경향도 많이 보인다. 허나 이에 대해 [[과학만능주의]]와 [[옥시덴탈리즘]]이 묘하게 혼합된 방어적인 모습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또 [[과학만능주의]] 맹신자들에게는 동서양 철학 자체가 쓰잘데기 없는 소리로 취급되기도 하며, 불교의 과학성을 열렬히 주장하는 의견은 [[유사과학]]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신비주의를 까는 것도 좋지만 지나치면 좋지 않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