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교 (문단 편집) === [[오두미도]](五斗米道)와 [[태평도]](太平道) === 도교의 시작은 보통 오두미도로 보고 도교의 창시자는 오두미도의 창시자인 장도릉으로 보는데, [[태평도]]가 있음에도 주로 오두미도만을 도교의 근원으로 보는 이유는, 태평도는 ~~[[황건적의 난|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삼국지]]의 군웅들에게 썰리고 썰려서~~ 사라지고 결국에는 천사도(=오두미도)로 흡수되었기 때문이다. 태평도는 장각이 [[태평경]](太平經)을 얻어 창시했다. 태평경은 [[도덕경]]을 계승하여 '도를 천하의 어머니로 삼고, 도는 만물을 낳는다'는 사상과 함께 불로장생의 방술과 신선이 될 수 있는 신선술 그리고 무격에 대한 내용이 실려있었다. 장각은 태평도를 창시하면서 태평경에 언급된 이상적인 사회를 실현시키고자 했다. 그는 스스로를 태현양사(太賢良師)라 칭하였으며 제자나 신도들을 받아들일 때 먼저 머리를 조아리고 자기가 지은 모든 죄를 고백하여 사죄하게 하였고, 부적을 내리고 주문을 외우면서 질병과 재앙을 소멸하는 의식을 행했다. 이렇게 교화를 시작한지 십 수년 만에 수십만 명이 가담하여 조직을 종교와 군사의 합일 조직인 36방(方)으로 만들고 방마다 거수(渠帥)라는 통속자를 두었다. 그 뒤 장각은 교도들을 이끌고 반란하여 '[[황건적의 난]]'을 일으켰으나 10개월 만에 진압되어[* 물론 [[황건적의 난]]이 불과 1년도 버티지 못하고 진압된 것은 사실이나, 이를 '삼국지의 군웅들에게 썰리고 썰리다 탈탈 털렸다' 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면이 있다. 일단 [[황건적]]의 난 자체는 1년만에 진압되었지만 한나라는 결국 황건적의 난으로 인해 촉발된 국가 멸망 테크를 수습하지 못하고 400년 역사에 종지부를 찍게 되는 것. 즉, 황건적의 1년은 400년간 이어져 온 거대 제국에 치명타를 입힌 1년이었다. 그리고 중국사 전체로 시야를 넓혀 보면, 장각을 중심으로 한 [[태평도]]의 반란은 <종교로 결합된 향촌 세력(농민) 반란>의 효시였다는 점 역시 생각해야 한다. 장각은 '종교적 비전을 매개체로 삼아 농민을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키면 거대 제국이라도 멸망에 몰아넣을 만큼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후한말 황건적의 난 이후 청말 [[백련교도의 난]]에 이르기까지 이 사례에 영향을 받은 무수한 농민의 난들이 대부분 중국 통일 왕조들을 괴롭혔고, 그 중 상당수를 무너트렸으며 몇몇 통일 왕조는 이런 농민 반란을 기반으로 성립했던 것. 여기에 태평도의 잔당들이 유입된 오두미도(=천사도)가 이후 중국에서 종교로서 도교의 기반이 된 점까지 생각하면 (삼국지연의의 전근대적, 영웅주의 사관에 기반한 관점과는 달리) 장각과 태평도가 역사에 남긴 흔적은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정권을 장악하여 결국 선양의 형태로 제위를 찬탈하려 시도한 [[조조|권]][[동탁|신]][[사마염|들]]> 이나 <일시적으로 일부 영토를 지배했으나 결국 통일왕조에 흡수당한 [[유비|지]][[손권|방]][[원소|세력]]들>보다 더 크면 컸지 결코 작지 않은 셈.] 남아있는 사람들은 천사도(=오두미도)에 가담했다. 오두미도는 '천사도(天師道)'라고 불리웠는데, [[태상노군]][* 도교에서 노자를 신격화하여 부르는 명칭이다.]이 장도릉을 삼천법사정일진인(三天法師正一眞人)으로 봉했다고 하여 그를 장천사[* 여기서 '천사'라는 이름은 천사도의 교주를 가리키는 말이 되어 계속해서 내려온다.]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오두미도라고 불린 이유는 입교할 때 신도들에게 쌀 다섯 되를 받았기 때문이다. 천사도, 즉 오두미도의 교조는 노자, 주요 경전은 도덕경이며, 장도릉은 특별히 '노자상이주(老子想爾注)'를 지어 교리를 정하였다. 노자상이주에서 장도릉은 도는 하나(一)이고 "하나의 형체가 흩어지면 기가 되고, 형체가 모이면 태상노군이 된다."라고 하여 노자를 '도道의 화신'으로 규정하였다. 또 도서(道書) 24편을 저술하여 천사도의 심오한 뜻과 교도들의 행동강령을 가르쳤다. 교구를 24개 치(治)로 나누고 제주(祭主)를 두었는데, 제주는 한 구역을 책임지는 수장으로 신도의 교화와 제사 등을 주관하는 법사(法師)의 역할을 했다. 또 그는 정실(靜室)을 설치하여 신도가 재계하고 기도하며 회개하는 장소로 삼았다. 천사도의 1대 교주 장도릉은 122세(!) 되던 해에 교의 최고 지도자들을 소집하여 천사의 직위를 아들 장형에게 넘겨주고, 더불어 역대 천사는 그의 적손들에게 전승토록 했다. 그리고 그의 손자가 바로 그 삼국지의 [[장로(삼국지)|장로]]다. 이후 천사도는 용호산을 본산으로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었지만, 중국에 [[공산당]]이 들어선 이후에는 대만으로 이주하여 거기서 명맥을 잇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