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래인 (문단 편집) == 정치적 관점 == >日本と韓国との人々の間には,古くから深い交流があったことは,日本書紀などに詳しく記されています。韓国から移住した人々や,招へいされた人々によって,様々な文化や技術が伝えられました。宮内庁楽部の楽師の中には,当時の移住者の子孫で,代々楽師を務め,今も折々に雅楽を演奏している人があります。こうした文化や技術が,日本の人々の熱意と韓国の人々の友好的態度によって日本にもたらされたことは,幸いなことだったと思います。日本のその後の発展に,大きく寄与したことと思っています。私自身としては,桓武天皇の生母が百済の武寧王の子孫であると,続日本紀に記されていることに,韓国とのゆかりを感じています。武寧王は日本との関係が深く,この時以来,日本に五経博士が代々招へいさ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また,武寧王の子,聖明王は,日本に仏教を伝えたことで知られております。 > >しかし,残念なことに,韓国との交流は,このような交流ばかり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このことを,私どもは忘れてはならないと思います。 >---- >일본과 한국 사람들 사이에는 옛날부터 깊은 교류가 있었다고 『[[일본서기]]』 등에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한국으로부터 이주해 온 사람들과 초빙되어 온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문화와 기술이 전해졌습니다. [[궁내청]](宮內廳) 악부(樂部)의 악사들 중에는 당시에 이주해온 사람의 자손으로 대대로 악사 일에 종사하며 지금도 때때로 아악(雅楽, ががく)을 연주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와 기술이 일본 사람들의 열의와 한국 사람들의 우호적 태도에 의해 일본으로 전해졌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후 일본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 자신으로서는 [[간무 덴노]](桓武天皇)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되어 있는 점에서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습니다. 무령왕은 일본과 관계가 깊었고, 이때 이래로 일본에 오경박사가 대대로 초빙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무령왕의 아들 [[성명왕]]은 일본에 [[불교]]를 전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과의 교류는 이러한 교류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통상적으로 [[임진왜란]]이나 [[일제 강점기]]와 같은 부정적인 관계를 돌려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 점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 >[[平成]] 13년(서기 2001년) 12월 8일 제125대 [[일본]] [[천황|덴노]] [[아키히토]]. 일본 궁내청의 공식기록 발췌.[* [[https://www.kunaicho.go.jp/okotoba/01/kaiken/kaiken-h13e.html|일본 궁내청 '天皇陛下お誕生日に際し(平成13年)']] 출처.] 한일 공통으로 민족주의적 감정, 정치적 이유 등으로 인해 다양한 논란의 인용 소재가 되고 있다. 일본 국어사전에서는 도래인을 고대에 한반도와 중국 대륙에서 일본 열도로 이주해온 사람들이라고 설명한다. 다만 현실적으로 보자면 한반도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절대다수였다. 세키네 히데유키 가천대 교수는 일본인의 기원이 '고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왜곡하는 기조가 일본 학계에 있다며, 일본인의 기원의 다양한 갈래를 주장하는 학자들도 도래인의 위상을 과소평가하거나 [[한반도]] 문화가 일본 열도에 전파된 것 정도로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심지어 몇몇 일본 학자는 도래인이 한반도를 거치지 않고 [[시베리아]], [[만주]], [[중국 대륙]] 남부에서 바로 건너왔다고 본다는데, 왜곡된 형태로나마 한국인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피하고자 만들어낸 억지라고 보았고, 인류유전학적으로 도래인은 분명 '고대 한국인'이 맞다고 주장했다.[* [[https://www.sedaily.com/NewsVIew/1KR9B1KJZP|#]]] 세키네 교수는 [[일본 제국]] 시절 유리할 때는 일선동조(日鮮同祖)론을 내세우고, "일본인은 조선을 조상의 나라로 생각했고, 일본은 (조선의) 식민지였다."라고 했던 학자(도쿄제국대 인류학 주임교수 도리이 류조, 1919년)도 있었던 일본 학계가 패전 후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특별한 민족론'을 내세우려 한반도와의 관계를 억지로 부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현 일본 학계가 한일 간 명백한 문화적 연속성이 있음은 알고 있으면서도 혈연 관계는 인정하면 안 된다는 신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https://www.sedaily.com/NewsVIew/1KR9B1KJZP|#]]] 한편 고대 일본어, 한국어 연구의 권위자로 [[반도 일본어설]]을 주장한 언어학자 [[알렉산더 보빈]] 교수 역시 양국 학계에 비슷한 비판을 하기도 했다. 반도 일본어설에서는 한국어계의 조상([[고조선]], [[부여]] 계열)이 [[만주]]와 한반도 북중부에 거주하다가 한반도 중남부로 남하하면서 그곳에 거주하던 일본어계의 조상이 일본 열도로 밀려난 것 아니냐는 [[가설]]을 제시한다. 일본으로 가지 않은 원주민들은 만주와 한반도 중북부에서 남하한 민족에 동화되었다고 본다. 그는 일본어족 계통의 언어가 고대 한반도 중남부에서 쓰였고, 고 일본어족 화자들이 남하하는 부여어족 계통의 집단에게 밀려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일본어가 형성되었다고 주장했다. 만약 보빈 교수 말마따나 일본인의 조상인 도래인이 한반도 중남부에서 건너왔다면 반대로 말하면, 한반도 중남부의 원주민은 일본인의 조상에 해당하는 민족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조삼모사]] 수준의 뒤집기인데, 이렇게 설명하는 순간 대중의 반발을 산다. 그래서인지 반도 일본어설은 고대사 사서에서 계속 암시되는 한반도 남부와 일본의 관련성[*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진무천황의 선조인 [[니니기]]가 한국을 언급한 점, 타카마가하라가 한국의 고령으로 지목되는 점, 스사노오가 신라에서 건너온 점, 가야 지명 중 일본어가 연상되는 지명, 백제와 일본의 긴밀한 관계, 호남과 가야 지역에 발견되는 [[전방후원분]] 등.]에 관하여 설명 가능한 학설 중 하나이지만 은근히 관심을 못 받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그것 때문만은 아니고 갑론을박이 있는 가설의 영역이라 주류 학설로 인정받기엔 더 연구해야 될 부분이 많긴 하다. [[총, 균, 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도 한반도에서 도래인이 넘어왔다고 봤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야요이 시대|야요이]] 일본은 한국에서 수백만의 이주자를 받아들였고 이들 [[이민]]자들은 야요이 전환기 무렵에 75000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조몬인]]의 유전자를 압도했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현대 일본인들은 지난 2000년간 그들의 고유한 문화를 수정, 발전시켜 온 한국인 이민자의 자손이라는 얘기이다. >---- >총, 균, 쇠 - 재레드 다이아몬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