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로 (문단 편집) === 한반도 === [[한반도]]의 경우에는 과거 도로 사정이 매우 좋지 못했다. 산지가 대부분인 지리적 특성이 도로의 발달을 저해했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국시대만 해도 [[경주 계림로 수레모양 토기]] 등의 유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도성과 그 주변이나 군사·교통의 중심지에는 도로를 건설함으로써 마차의 통행을 용이하게 하였는데 고구려의 [[국내성]]이나 [[평양성]], 백제의 한성([[풍납토성]]과 [[몽촌토성]])과 사비도성, 신라의 월성 등에서 도로유적이 확인되었다. 도로의 폭은 큰 도로의 경우 10m 내외에 해당하는 것도 있으며 수레가 지나다니면서 나타나는 수레바퀴의 흔적도 확인된다. 다만 로마처럼 돌을 이용해 만든 도로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예로부터 인간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건설을 진행하기 때문에 한반도의 국가들 역시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로 도로를 만들었다. 따라서 도로 역시 모래, 자갈, 황토 등 다양한 성질을 가진 흙들을 혼합하여 단단하게 다짐으로써 도로를 건설하였다. 다만 [[조선]] 초기에는 여말선초의 혼란기로 인해 화물을 실어 나를 마소 부족, [[경국대전]]으로 [[부역]] 일수를 연간 6일로 제한하여 육로 개발이 미진하였다. 대신 수로와 인력을 통한 물류 운반이 대부분이 되었다. [[운하]] 항목에 나오듯 작은 강까지 이용해서 [[세곡선]] 등을 [[내륙지역]]까지 운송이 가능하므로 힘들게 도로를 관리할 필요가 없었다. 나머지 수요도 [[보부상]]의 강력한 네트워크로 처리했다. 물론 한성의 경우 도로를 한성부에서 직접 관리했으며, 청결과 미관에도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이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관리가 소홀해져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가건물(가가,街家)이 도로에 즐비하게 된다. 다만 이 시기 잔도 건설이 시작되고 실학자들이 도로 건설을 주장했다. 그 외 조선시대 도로에 대한 기록으로 [[도로고]]가 있었다. 한반도의 기후 또한 도로 유지에 불리한 요소였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여름에는 비가 퍼붓고 찌는 날씨가 이어지다가 겨울에는 얼음이 얼 정도로 추운 날씨가 이어지므로 도로가 버티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당장 현대에도 우리나라 기후가 도로에 미치는 악영향은 꽤나 심각하다. 견고한 콘크리트 도로조차 몇 해가 가기도 전에 갈라지고 깨지고 만다. 멀리 갈 것 없이 보행자 도로의 보도블럭이 금방 뜨고 깨지는 것도 한국의 기후 탓이 크다. 전근대의 예산과 행정망으로는 전국으로 뻗어나가는 대로를 유지하기 힘들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들어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신작로[* 새로 만든 길이라는 뜻으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게 새로 낸 길을 이르는 말.]가 개설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박정희]] 정권의 적극적인 도로 확장 정책에 의해 [[고속도로]]가 건설되고 [[국도]], [[지방도]], [[광역시도]] 등이 확장, 개량되었다. 한편 [[북한]]은 도시 중심부, '고속도로'로 지정된 4개 가량의 도로, 고위층을 위한 특별도로를 제외하면 [[비포장도로|비포장]]도로가 대부분인 상황이다. 특히 도시 사이를 잇는 도로가 관리 상태가 나쁘다. 평양을 조금만 벗어나면 도로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차량이 심하게 덜컹거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