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림 (문단 편집) == 여담 == * 역사서에 기록된 한국사 최초의 간첩이다. * 사실 개로왕이 정말로 도림의 속임수에 넘어가 [[나라]]를 말아먹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이견이 있다. 당시 도림이 개로왕에게 건의했던 토목 공사들은 어디까지나 당시 백제에 정말로 필요했던 것들이 많았고 개로왕도 그리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토목 공사는 개로왕의 의심을 피하고 마음놓고 첩자질을 하기 위함으로 볼 수 있다.[* <[[역사저널 그날]]>에서 [[권일용]] [[프로파일러]]가 도림을 프로 파일링했을 때 백제를 잠입하기 위해 여러 해를 거쳐 준비한 정황들로 봐서는 도림이 개로왕을 [[가스라이팅]]했다는 의견을 내비치기도 했다.] * [[중국]]의 [[전국시대]]에 도림과 흡사한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종횡가|합종]]으로 유명한 [[소진(전국시대)|소진]]이다. 말년에 [[제나라]]에 가서 민왕에게 사치와 대규모 토목 공사를 하게 해서 제나라 국력을 소모하게 만든 것이다. 도림은 임무에 성공했지만 소진은 성공 단계까지는 가지 못하고 [[암살]]당했는데 비록 실패했으나 죽기 직전에 보여준 지략가로서의 면모 덕분에 오히려 유명해졌다. * 마찬가지로 전국시대의 인물인 [[정국(전국시대)|정국]] 역시도 비슷한데 늘 강국인 [[진(통일왕조)|진나라]]에게 위협당하고 살던 [[한(전국시대)|한나라]]가 진나라의 국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정국을 보내어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게 했다. 정국은 진나라 왕을 설득하여 진나라에 흐르는 큰 강 두 개를 연결하는 대규모 수리시설을 건설하였는데 일이 잘 진행되다가 그만 덜미가 잡혔다. 하지만 정국은 이것이 완성되면 진나라에게도 이익이 될 것이라며 한나라는 잠시 목숨을 보전하는데 그치겠지만 진나라에게는 만세의 공으로 남을 것이라며 자기변호를 했고 일리가 있다 싶었던 진나라 왕도 정국을 살려주고 정국의 건의로 추진한 공사도 유지했다. 그렇게 건설된게 '정국거'인데 이 덕분에 진나라에서는 이후 흉년이 없었다고 한다. * [[신라]] [[소지 마립간]] 때 [[거문고]] 갑을 활로 쏴서 그 안에 숨어있던 [[간통]] 관계인 승려와 [[왕비]]를 죽였다는 <[[사금갑|사금갑(射琴匣)조]]>는 보통 신라 내부 불교 세력과 토착 [[종교]] 세력의 갈등으로 풀이하는 경우가 많지만 장수왕이 백제에 1번 써먹은 방법으로 신라에도 승려를 [[간첩]]으로 보냈다가 실패한 것이 아니냐고 보는 주장도 있다. 소지 마립간의 재위 기간(479~500)을 감안하면 거의 직후나 마찬가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