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정궁 (문단 편집) === 조선 왕실의 뿌리가 되다 === 이렇게만 보면 평범한 일반 [[왕자]]의 [[저택]]에 지나지 않지만 이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덕흥대원군|덕흥군]]의 3남 하성군이 [[명종(조선)|명종]]의 뒤를 이어 [[선조(조선)|선조]]로 즉위하면서 다른 일반 [[왕족|종친]]들의 집과는 확실히 다른 대우를 받았다. 덕흥군이 [[송나라]] 복왕의 예를 따라[* 사실 저 예시를 그냥 쓴 게 아니고, 나름 의미가 있어서 적었다. [[아버지|친아버지]]를 다른 일반 왕족들과 다르게 높여 대접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인지상정. 하지만 전례없는 일이라 무작정 예우하긴 좀 그랬고, 이에 [[명분]]거리로 쓰기 위해 [[중국]]의 비슷한 [[사례]]를 찾아낸 것이다. 실제로 [[왕]]들이 뭘 하려는데 [[신하]]들이 반대할 경우, 중국의 예를 들먹이면 반발이 무마된 적이 많았다.] 왕의 [[아버지|친아버지]] 자격으로 '''[[대원군]]''' 칭호를 받았고[* 단 이 때 [[덕흥대원군]]은 이미 [[사망]]했다. 그 부인 [[하동부대부인|하동부대부인 정씨]] 역시 마찬가지.] 이에 따라 잠저 후원에 대원군 가묘[* 家廟 집안의 사당.] 덕흥궁(德興宮)이 건립되었다. 그리고 덕흥대원군의 종손(宗孫) 4대까지 [[대군]]에 준하는 대우를 하고[* 작위 자체는 군이었다. 그나마도 [[응천군(1579)|생전에 도정이었다가 사후에 군으로 추증된 사손]]도 있었다.] 그 이후 사손(嗣孫)들에게는 '당상관 돈녕부 정3품 '''도정(都正)'''' 직을 대를 이어 세습하게 했다. 그래서 이 궁의 이름이 ''''대대로 도정들이 사는 곳'이라 하여 도정궁'''인 것이다. [[조선시대|조선 후기]]에 [[순조]]가 [[덕흥대원군]]의 종손들에게 종친부 정1품 군(君) [[작위]]를 대대로 세습하게 했다. 그래서 이후 덕흥대원군의 사손(嗣孫)들은 내내 엄연히 정식 [[왕족]]이었고, 그래서 이 도정궁 13대 종손(宗孫) [[경원군(1842)|경원군 이하전]]이 [[안동 김씨]]에게 밉보이지만 않았어도 [[헌종(조선)|헌종]] 사후 [[왕위]]를 계승했을 것이라는 풍문이 돌기도 했다.[* [[경원군(1842)|이하전]]은 [[조선/왕사|조선 왕실]] 직계와 실제 혈통으로는 [[덕흥대원군]]의 아들 대에서 갈라졌고 법적으로 보면 [[중종(조선)|중종]] 때 갈라졌다.([[선조(조선)|선조]]가 [[명종(조선)|명종]]의 [[양자(가족)|양자]]이기 때문에.) 그래서 [[헌종(조선)|헌종]]과는 실제로는 25촌(...), 법적으로는 27촌(...)이다. [[철종(조선)|아무리 항렬이 높다지만 실제 혈통 상 헌종의 7촌 숙부인 사람]]과 25촌 - 27촌이 되는 사람 중에 누구한테 왕위를 물려줄 것인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굳이 말을 안해도 될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