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쿄국립박물관 (문단 편집) == [[오구라 컬렉션]] == 도쿄국립박물관에는 [[대한민국]] 유물들도 전시하는데 여기에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이 전시실을 채우는 유물 상당수는 일명 '[[오구라 컬렉션]]'인데, [[1908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제연합자회사를 창립하여 재산을 축적한 [[일본인]] 사업가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 1870-1964))가 오랜 세월 수집한 문화재들이다. 오구라는 1920년대 대구, 경주 일대에 도굴이 성행했을 때 물건만 좋다면 종류나 값을 따지지 않고 마구잡이로 구입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오쿠라 컬렉션은 토기, 고고품, 석조품, 조각, 칠공예, 회화, 서예 등 종류가 다양하다. 1945년 광복이 되자 오구라의 수집품 수백여 점을 회수하여 대구시와 [[경주시]]로 옮겼지만[* 이 유물들은 훗날 [[국립대구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었다. 1964년 대구 503방첩대가 오구라가 살던 집 지하에서 유물 2백여 점을 추가로 발견하여 그해 국립경주박물관으로 보내었다.] 가치가 높은 문화재를 이미 일본으로 반출한 뒤였다.[*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송산리 고분군]] 6호분을 도굴한 [[가루베 지온]]과 같이 유출했다고 알려졌다.] 1982년 오구라가 사망하자 아들이 소장품 1040점을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하였고, 일본 정부는 이들 유물 중 8점은 국보, 39점은 중요문화재로 지정하여 관리한다. 오구라 컬렉션은 1960년대 일본에서 한국문화재 귀환운동이 일어났을 때 제일 먼저 반환대상으로 거론되었으나, 개인이 수집한 유물이라는 이유로 반환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오구라 컬렉션의 일부인 조선왕실 유물 9점, [[금관총]] 유물 8점, 부산 연산동 고분 유물 4점, 창녕 출토 유물 13점 등 총 4건 34점이 [[도굴]]품이라는 사실이다. [[유네스코]] 협약에서는 불법취득한 문화재는 원 소유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명시하는데[* 하지만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식민지 경영과정에서 불법유출한 유물들로 박물관을 채운 국가들 대부분이 무시하는 탓에 사실상 사문화된 협약이다. 이 박물관들이 협약을 따르면 대표 유물들이 전부 빠져나가 박물관 유지가 불가능해질 정도이다. 일본 역시 다른 나라들과 발맞추어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우리나라의 주장을 무시로 일관한다.] 이 유물들이 도굴품이라는 정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근거는 수집자 오구라 본인이 작성한 ‘오구라 컬렉션 목록’이다. 여기에 유물들의 출토지역과 원소장처가 기록되었는데, 이것이 도굴의 확실한 정황증거다. 또 도쿄국립박물관 측은 도굴품인 줄 아는데도 유물들을 기증받아 박물관 윤리강령을 위반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여기에 전시된 한국 문화재 목록에 대해서는 [[오구라 컬렉션]] 문서 참조. 다만 도쿄국립박물관에 있는 모든 한국 문화재가 오구라 컬렉션은 아니고 [[양산 부부총 출토 유물 일괄]]처럼 오구라 외 다른 경로로 반출해 도쿄국립박물관에 전시 중인 한국 문화재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