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도쿄도 (문단 편집) == 역사 == [[간토평야]]의 대부분은 원래 [[바다]]였지만, 여러 강이 모이며 퇴적물이 잔뜩 쌓여 생긴 충적 평야가 넓어지면서 지금의 간토 평야가 되었다. 이 때문에 중세 정도까지만 하더라도 갯벌과 습지가 많아 사람이 살기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았다. 변방인 관동 지방에 중심지를 두었던 [[가마쿠라 막부]]나 [[후호조씨]]도 간토 평야가 아닌 지금은 도쿄 근교의 산지를 낀 소도시인 [[가마쿠라시|가마쿠라]]나 [[오다와라시|오다와라]]에 자리잡았다. 이는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도쿄만 일대보다 사가미만 일대가 더 발달했고 지형이 방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과거 [[율령국]]인 [[무사시노쿠니]](武蔵国)의 도시마군(豊島郡)으로 역사 속에서 이름이 등장했고, 이미 7세기에 [[센소지]]가 건립되기도 했다. 15세기 들어서 [[오타 도칸]]이 이 부근에 [[에도성]]을 건설했다. 근세 이전 도쿄(에도)는 습지가 가득한 작은 농어촌 마을이었다. 이러한 도쿄가 본격적으로 일본 역사의 중심지로 등장한 시기는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막부를 연 이후이다. 이 시기 간토 평야는 이미 충분히 퇴적되어 비옥하면서도 일본 열도에서 가장 넓은 평야 지대가 되었다. 열도의 중간[* 다만 에도 막부 이전의 일본은 [[홋카이도]]를 완전히 병합하지 못했고, [[도호쿠]] 역시 산세가 험한 변방이었음을 고려하면 전근대 최적의 입지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태평양 중심인 현대와 달리 대륙과의 교섭이 중요했던 전근대시기 일본에서 간토는 지리적으로 치우쳐진 곳이었다.]에 위치한 최적의 입지 조건이었지만, 지역민들이 호전적이고 독립적인 기질이 강한 데다가 과거에 바다였던 저지대 특성상 침수 피해[* 과거에 바다였다가 메워진 충적 평야에서 고질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다.]가 잦아 농업 산출량이 적었다. 하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 지역을 완전히 장악한 이후 대대적으로 관개하여 일본의 중심으로 육성했다. 이에야스는 먼저 치요다 구에 에도성의 기반 공사를 하면서 이곳을 중심으로 방사상(달팽이 모양) 수로를 건설하고 이 수로를 확장해 나가는 방식의 도시계획을 수립해 수문을 만들고 다리로 연결했다. 그리고 강대한 방어력과 넓은 시장과 부속부지를 갖춘 도시로 개발했고, 이에야스 이후로도 계획 하에 꾸준히 건설한 끝에 3대째에 에도가 완성되었다. 에도 일대는 이후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고, 18세기에는 인구 '''130만'''에 달하는 대도시로 성장했다. 이는 동시대 다른 국가들의 수도를 능가하는 압도적인 인구 밀도였다. 인구수로는 [[영국]] [[하노버 왕조]]의 수도 [[런던]],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수도 [[파리(프랑스)|파리]], 심지어 [[청나라]]의 수도 [[베이징]]마저 능가하는 수치였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학자들 다수는 고온 다습한 기후 조건 덕에 쌀 농사를 집약적으로 지을 수 있었고, 발달된 상업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또한 에도 막부에서 시행한 [[참근교대]]라는 독특한 제도를 통해 대량의 인구가 주기적으로 유입되기도 했다. 에도 시대에 수로 구조를 믿고 지나치게 조밀한 상태로 확장시킨 도시 구조가 [[메이레키 대화재]]를 불러왔다고 판단한 막부는 대화재 이후에는 소화반을 준비하고 곳곳에 방화공터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화재에 대응할 수 있게 후속 조치를 갖추며 더욱 도시를 확대해갔다. 에도 막부가 무너지고 [[메이지 유신]]이 시행되면서 [[대정봉환]], [[왕정복고]]로 천황의 권력이 강화되었다. 에도가 몇백년간 일본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던 만큼, [[일본 황실]]은 1869년 에도를 '동쪽의 수도'라는 의미에서 도쿄(동경, 東京)로 개칭하고 기존의 본거지인 [[교토]]를 떠나 도쿄로 처소를 옮겼다. 이때 정부는 천도를 명시하지는 않고 도쿄에 대비해 교토를 '서쪽의 수도'인 사이쿄(서경, 西京)로 칭했기에 명목상으로는 도쿄와 교토 모두 일본의 수도였다. 하지만 일본 황실은 이때부터 즉위식 등 특별한 행사가 없는 한 교토에는 거의 체류하지 않았고 이후로 '도쿄 1극 체제'가 형성되었다. 이어서 요코하마-도쿄 철도 부설을 시작으로 항구 [[요코하마시|요코하마]]와 도시 도쿄가 일본 근대화의 중심축이 되어 인구는 더욱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광역도시권 중 하나로 성장했다. 그렇게 성장하던 1923년, 규모 7.9~8.2인 [[관동대지진]]이 발생했다. 이때 대화재가 일어나, 목조 위주였던 건물들이 크게 손실되었고, 사망자 10~14만여 명이 발생하는 사상 최악의 재해를 겪었다. 피해는 일본 전체를 휘청거리게 할 정도였고 잠시 최대 도시의 지위를 [[오사카부|오사카]]에 뺏기기도 할 정도로 도쿄는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복구 과정에서 더욱 발전된 근대적인 도시로서 재건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2차 대전이 발발하고, 1945년 일본의 턱밑까지 북상한 미군에 의한 [[도쿄 대공습]]이라는 무차별 폭격이 가해져 재건되었던 도쿄는 또다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잿더미가 되었다. 이렇게 초토화에 가까운 파괴를 두 번이나 받았기 때문에 현대 도쿄에는 과거 '에도'라고 불렸던 시기의 모습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현재 도쿄내에 분포된 유적이나 역사적인 목조 건축물들은 대다수가 현대에 --짝퉁--재건된 것이다.[* 이 때문에 도쿄 보다는 오히려 근교에 있는 [[카와고에시]]가 옛 에도 시가지 분위기를 더 잘 보존하고 있어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현재 도쿄의 모습은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재건된 것이다. 한국 전쟁의 특수를 받아 경제가 부흥하면서 현대적 건물들을 새로 지어올렸고, 버블 경제 시대에는 많은 마천루가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버블 이후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었지만 2000년대 이후 들어 미나토구 등 도심이 재개발되면서 롯폰기 힐스, 도쿄 미드타운 등 현대식 [[마천루]]들이 건설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