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러관계 (문단 편집) === 근세 === 러시아는 발트해 진출을 노리고 폴란드-리투아니아 및 스웨덴과의 지속적인 전쟁을 벌였다. [[이반 4세]] 시절에는 [[루스 차르국]] 군대가 [[리보니아]]를 침공하였으나, 현지인들에 대한 지나친 약탈과 학살로 반발을 사서 진출이 저지되었다. 이반 4세 사후 [[혼란 시대]]를 걸친 러시아는 [[로마노프 왕조]]가 세워지며 복구되는데 로마노프 왕조의 기원 역시 독일계로 여겨진다. 러시아의 발트 해 유역 진출은 표트르 대제 시대 전후에야 이루어졌다.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일대에서 라트비아인과 에스토니아인들은 주로 농노로, 독일인들은 주로 지주와 상인 계급을 차지하던 상황이었는데 러시아 제국의 점령 이후에도 발트 지역에서 독일계들의 기득권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 외에도 폴란드 분할 과정에서 폴란드-리투아니아 영내 상당수 독일계 커뮤니티가 러시아 제국 영토로 편입되었던 역사가 있다. 18세기에 로마노프 왕조의 대가 끊어질 뻔 했으나, 역시 독일인이었던 [[표트르 3세]]와 [[예카테리나 2세]]가 러시아로 건너와 홀슈타인-고토르프-로마노프(Гольштейн-Готторп-Романовской) 왕조가 되어 [[니콜라이 2세]] 때까지 러시아를 지배한다. 예카테리나 2세를 비롯한 독일계 황제들은 독일인 이민을 장려하였는데, 이미 중유럽과 동유럽 각지에 퍼져있던 독일인 상인 및 농민들이 러시아로 건너와 오늘날의 [[독일계 러시아인]]을 이룬다. 이후 18세기 말엽 프로이센과 러시아는 [[폴란드]]를 [[폴란드 분할|사이좋게 나누어 가지고]], 러시아는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 때 프로이센을 지원하였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에는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러시아와의 친선을 외교정책의 골자로 삼았고, 결국 후방을 찔릴 염려를 충분히 없앤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인접국과의 전쟁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게 됨으로써 독일 통일을 이뤄낼 수 있었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독일계 러시아인, version=70, paragraph=2.1~2.2)]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