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립유공자 (문단 편집) === 현대적 테러리스트와 일치하는 사례 === 테러리스트와 전혀 다른 열사와 의사분들도 많지만 이에 비해 테러리스트와 유사한 독립유공자들도 존재한다. * [[https://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pageTitle=Merit&mngNo=950031|1920년에 사망한 최영호(1996년 독립장)]] - [[그로데고보 학살약탈 사건]] * [[https://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pageTitle=Merit&mngNo=951384|1938년에 사망한 박일리아(2006년 애국장)]] - [[니콜라옙스크 사건]], [[자유시 참변|사할린의용대의 지역 주민에 대한 폭력]] * [[https://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pageTitle=Merit&mngNo=8869|1931년에 사망한 김규식(1963년 독립장)]] - [[고려혁명군의 러시아 농민 살해사건]] * [[https://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pageTitle=Merit&mngNo=71337|1924년에 사망한 신현대(2005년 애국장)]] - [[1924년 고려혁명군 사건]] * [[https://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pageTitle=Merit&mngNo=8900|1930년에 사망한 김좌진(1963년 대한민국장)]] - [[김좌진/비판/지역주민에 대한 폭력]] 현대적 의미지를 테러를 자행한 독립유공자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좌파]], [[우파]] 양쪽에게 [[흑역사]]. 다만 현대적 의미의 [[테러리스트]]적인 독립유공자는 한국이 허덕이던 [[박정희]] 시대보다는 [[김영삼]] 정권 이후에 포상된 사례가 일반적이다. 해방 이후 [[백의사]], [[서북청년회]] 등의 우익 성향의 테러 단체는 역사강사들에게 대대적으로 비판되는데 비해 해방 전의 [[민족해방]] 성향의 테러단체들은 비판되지 않는다. 베트남 참전유공자들이 일부 지식인들에게 차별받는 점이 이점인데 베트남 참전유공자들은 일부 군인들의 전쟁범죄와 주민피해만 편향적으로 강조되는데 비해 독립유공자는 학계 내부에서 인정되는 사건도 외부로 거의 알려지지 않는다. 황당한 건 그런 차별적인 인식이 '''만주의 항일독립운동 분야의 역사학자'''를 통해 유포됐다는 것이다.[* 한홍구의 박사학위 주제는 '''[[김일성]]'''과 만주에서의 항일유격투쟁이었고[[http://www.riss.kr/link?id=T8444237|#]], 한홍구도 "제가 전공한 만주에서의 항일독립운동"이라고 인정하고 있다.[[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7167.html|한홍구, "마음까지 새까맣게 타버린 당신!"]] 한홍구는 논문 이용자 순에서 역사학 분야 top5에 달하는 인기를 보유했다.[[https://archive.md/e3lVi|2021년 12월 5일 00:56:27 UTC]]] 일부 만주독립운동 사학자들은 일부 독립유공자의 범죄는 일반화하지 않는데 비해 베트남 참전유공자의 범죄를 극단적으로 일반화하거나 참전자체를 폄훼하고,[*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255.html|한홍구, "제국주의의 베트남 침략전쟁에 동원되어 민간인 학살의 과오를 범하고서도 사과하지 않는 나라"]]] 범국민적 사과운동이 필요하다고 까지 주장되고, [* [[http://legacy.h21.hani.co.kr/section-021025000/2001/08/021025000200108280374066.html|성공회대 한홍구 교수(한국현대사)는 한번 사과하고 끝날 일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우리는 일본처럼 어물쩍 넘어가지 않는다는 걸 외교적으로 과시했다는 점에서는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사과를 하려면 우리가 어떤 고통을 줬는지 철저히 규명한 뒤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없었다. 대통령만의 사과가 아닌 범국민적 사과운동이 필요하다."]]] 국군이 베트남인(베트콩으로 추정)에게 총을 겨눈 인형은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조선인에게 총칼을 겨눈 일본군과 같은 것이라 주장한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78281.html|한홍구 "터널이 끝나는 곳에는 한국군이 베트콩으로 보이는 두 명의 베트남 사람들을 무릎 꿇려 놓고 총을 겨누고 있는 실물 크기의 인형을 세워놓았다. 이 인형들은 그 후 누군가가 부숴버려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지만 참으로 부끄러운 물건이 아닐 수 없다. 입장을 바꿔놓고 일본이 과거 조선에 출병한 병사들의 훈련지에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 기념관을 짓고 오늘의 일본의 번영을 가져온 초석이 된 사건이라고 찬양하면서 바지저고리를 입은 조선인에게 총이나 칼을 겨누고 있는 일본군을 세워 놓았다면 우리의 심경은 어떨까?]]] 국가적으로 동일한 국가유공자임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참전 유공자는 일부 군인들의 범죄와 주민피해만 일방적으로 강조되는 데 비해, 독립유공자는 일부 독립운동가들의 범죄와 주민 피해에 대한 언급이 금기시된다. 같은 유공자라도 전자만 이상한 집단이 되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