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소전쟁 (문단 편집) == 배경 == 전쟁의 원인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아돌프 히틀러]]의 [[게르만]]-[[아리아인]] 인종의 '동방생존권'인 [[레벤스라움]](Lebensraum)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 유대-볼셰비즘(Judeo-Bolshevism)을 제거하고 '열등인종(Untermensch)'인 [[슬라브족]]을 정복한 후 추방, 노예화시켜 버림으로서 최종적인 '천 년 제국'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데올로기]]적 목적과 소련을 격파하여 굴복시킴으로서 끈질기게 저항하는 [[영국]]을 굴복시킨다는 히틀러 특유의 전략적 사고방식이 동시에 작용한 것으로 보이며 히틀러의 의중에서 어느 쪽이 더 비중이 컸는지는 알 도리가 없고 자료가 밝혀질수록 논란만 가중되고 있다. 히틀러는 집권 전부터 공공연히 [[공산주의]]가 [[배후중상설|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 원인 중의 하나라고 주장했으며]],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에 대해서 대단히 적대적이었다.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막판에 궁지에 몰린 독일 제국은 '오히려' 공산주의자인 [[블라디미르 레닌]]을 [[러시아]]로 가도록 도와주는 대가로 레닌이 정권을 잡으면 전쟁에서 발을 빼기로 약속했고 진짜로 레닌은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전쟁에서 발을 뺐다]]. 그 덕에 독일은 그나마 남아있던 여력을 서부로 집중시킬 수 있었다. 히틀러의 주장과 다르게 제1차 세계 대전 때의 소련은 도리어 다 죽어가던 독일이 조금이라도 더 버틸 수 있던 단초를 제공해 준 셈이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는 독일과 소련의 밀월 관계가 있었다. [[러시아 혁명]] 당시 소련 인사들은 독일의 도움을 받아 혁명을 성공시킨 적이 있으며 레닌도 독일 제국 측이 제공한 열차를 타고 [[스위스]]에서 러시아로 [[밀입국]]했다. 그들도 [[스파르타쿠스 연맹|독일 공산주의자들]]의 [[독일 11월 혁명|봉기]]를 지원하려 하기도 했다. 리처드 오버리의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에서도 말하듯 제1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전범 국가이자 [[베르사유 조약]]으로 군사력 확장을 크게 제한받고 국제 사회에서 평판이 추락한 독일과 세계 각국의 [[자본가|집권층]]이 전혀 환영할 수 없는 이념인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은 어느 면에서는 [[극과 극은 통한다|동질성]]을 지녔던 것이다. 하지만 히틀러가 집권한 나치 독일이 군비를 증강하며 유럽에 전운이 감돌자 위협을 느낀 소련은 [[영국]]-[[프랑스]]-[[폴란드 제2공화국]]-소련 4자 안보 체제를 구상하게 되었다. 그러나 소련의 의도를 의심한 서방 측의 불신에 의해 이는 난관에 봉착했다. 소련은 겨우 [[체코슬로바키아]]와 군사 협정을 체결하였으나, 체코슬로바키아는 1938년 [[뮌헨 협정|나치 독일에 의해 합병되었다.]] 소련은 체코슬로바키아라는 동맹국을 상실해 버렸고 유럽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