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소전쟁 (문단 편집) ==== [[승리의 날]] ==== 이후 [[소련]]과 소련에서 분리된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CIS]] 국가들은 매년 [[승리의 날]](День Победы: 뎬 빠볘듸)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승리를 기념하며 수십만 명의 군사들과 신형 무기들을 공개하고 국력을 과시하는 기념일로 자리 잡았다. 1990년대부터는 [[독일]]의 정상들까지 초청받고 있다. 일단 현대 독일인들도 나치와 히틀러를 아주 부정적으로 평가하기에 나치를 물리친 것을 함께 기념한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이 날에 대한 자세한 것은 [[승리의 날]] 문서 참조. "소련군이 전쟁에서 승리한 이 날은, [[게오르기 주코프]] 원수의 말에 따르면, 소련 인민의 삶에서 '영광의 순간'이 되었다. 이는 소련 역사상 사람들이 조국의 승리와 자유를 위해 감당한 상실의 의미가 명약관화했던 유일한 시기다." 역사학자이자 라디오 방송 '베스티 FM'의 정치 평론가인 안드레이 스베텐코의 말이다. 사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가 소련 시절보다 더 성대히 기념하는 기념일이다.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 현대 러시아인들의 국가적 [[자긍심]], [[긍지]]의 원천이다. 러시아 민족주의로 과거의 승리를 되새김질하는 [[추억팔이]]라며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나치 독일|피할 수 없는 적]]과 생사를 건 결전에서 크나큰 희생을 치르며 승리하여 초강대국으로 등극했기 때문이다. 독일군의 조직적인 학살에 의해 끔찍한 피해를 입었고 [[모스크바 공방전]] 당시에는 거의 패배 직전까지 갔지만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레닌그라드 공방전]]의 어마어마한 피해에도 무너지지 않고 [[쿠르스크 전투]] 등에서 반격하여 결국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대반격에 나서 [[베를린 공방전]]을 끝으로 적의 수도를 함락시키며 기적적인 승리로 이어지게 되었으니 그들의 입장에선 더없이 감격스러운 날이었을 것이다. 이 날은 많은 러시아인들에게 특별한 날이다. 독소전쟁은 어마어마한 희생을 치른 [[총력전]]이었기에 전쟁의 상실을 겪지 않은 가족은 러시아에서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며, 전쟁에 참가한 사람들도 아직까지 일부 살아있다.[* 골때리게도 독소전쟁의 참전용사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휘말려 사망한 사례가 있다.] 5월 9일이 조국 러시아에 자긍심을 느끼는 계기가 된다고 인정하는 러시아 사람들이 많이 있다. 세계적으로 봐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이었고 이는 러시아의 역사를 통틀어도 비견할 예가 없는 가장 찬란한 승리였다. 러시아는 [[나폴레옹]]을 막기는 했지만 완벽한 승리는 아니었고 [[크림 전쟁]]부터 열강에게 얻어맞기만 했기에 세계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독소전쟁 이후 소련은 세계만방에 자신들이 얼마나 강대한 힘을 떨쳐보일 수 있는지 깨닫고 [[냉전|미국과 세계 질서를 양분하는 축으로 성장]]했으니 이 때문에 러시아인들은 [[러시아사|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 언제냐는 질문에 압도적으로 대조국전쟁 승리라고 답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기성세대 사이에는 냉전기의 잘못된 교육 탓에 "독소전은 러시아가 독일을 두려워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잘못된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러시아인이 들으면 실소를 금치 못할 듯.][* 사실 한국이 오랫동안 강력한 [[반공주의]] 국가였던 데다 [[철의 장막]]으로 인해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에 대해 1990년 수교 이전까지는 거의 악마시했고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독소전쟁에 대해서도 잘못 알려진 편견들이 매우 많다. 심지어 나치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을 함락시킨 군대가 소련군이 아니라 연합군이라고 두루뭉실하게 알고 있거나 아니면 아예 2차 대전 때 소련이 참전하지 않았다는 터무니없는 인식조차 있을 정도. 물론 이는 단순히 반공 교육의 영향 때문은 아니고 미군 중심의 할리우드 역사관에 익숙한 탓도 있다.] 소련 시절 [[붉은 광장]]을 지나는 [[군사 퍼레이드]]는 [[10월 혁명]] 기념일(11월 7일)에만 매년 실시되었고 승리의 날에는 1965년, 1985년, 1990년에만 실시되었다. 스탈린 시대와 [[흐루쇼프]] 시대에는 공휴일도 아니었다. 역사학자인 데니스 바비첸코에 따르면, 이오시프 스탈린과 그 사후 소련을 이끈 니키타 흐루쇼프는 대조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군사령관들이 정치적으로 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때문에 군사령관들과 참전용사들의 공적을 치하하는 일에 인색했다. 1965년에야 승전기념일은 공휴일로 지정되었고 군사 퍼레이드가 실시되었다. 승전기념일을 국가적 차원에서 전국적 규모로 성대하게 기념할 수 있도록 한 최초의 소련 지도자는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였지만 그의 재임기에도 군사 퍼레이드는 혁명 기념일에만 매년 실시되었고 승리의 날에는 1965년에만 치러졌다. 소련 붕괴 이후 10월 혁명 기념일은 없어졌고 1995년 승리 50주년 퍼레이드 이후 매년 5월 9일에만 군사 퍼레이드를 실시한다.[* 다만 [[모스크바]]에서는 10월 혁명 기념일이 아니라 1941년의 [[모스크바 전투]] 기념일로 기념행진을 하는 경우는 있다.] 다만, 이는 명확히 소련만의 관점으로 소련 주위 동유럽 국가 중 일부는 이 날을 반기지 않는 경우도 있다. 가령 발트 3국은 이 날을 소련에 먹힌 날로 기억한다고 한다. 쉽게 생각해 보면 [[청일전쟁]]도 일본 제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해 준 뜻깊은 승리이지만 그 전쟁을 계기로 국권상실의 비극에 더욱 가까워진 [[대한제국]]의 후손인 [[한국인]]들에겐 마냥 반가운 소식은 아닐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