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소전쟁 (문단 편집) == 어록 == >'''그대의 이름은 무명이지만 그대의 행동은 불멸이다.''' >'''Имя твоё неизвестно, подвиг твой бессмертен''' >---- > - 모스크바 무명 용사 비에 적혀있는 문구 >Wollt ihr den totalen Krieg? Wollt ihr ihn, wenn nötig, totaler und radikaler, als wir ihn uns heute überhaupt erst vorstellen können?[[http://serviceapi.nmv.naver.com/flash/convertIframeTag.nhn?vid=C5AE4D9BD8F4F16EF0183F92C1B20F2CCBFD&outKey=V126b6767013f6849044f9c201b6901c89de54efa8961c37cd56c9c201b6901c89de5&width=720&height=438|#]] >여러분! [[총력전]]을 원하십니까? 만약 필요하다면, 오늘날 우리가 대체로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도 더 급진적이고 총력적인 전쟁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 > - [[파울 요제프 괴벨스]][*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이 패배한 직후, 마지막 카드인 1,000만 징병 직전 군중들을 다시 선동하기 위해서 베를린 스포츠 궁전에서 행한 연설. 괴벨스는 이 연설로 인해 권력이 더 강화되었다고 한다.(출처:안토니 비버, <피의 기록 스탈린그라드>)] >국민 여러분! 우리 정부와 그 수반이신 [[이오시프 스탈린|스탈린]] 동지께선 저에게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하도록 위임하셨습니다. 오늘 오전 네 시를 기하여 단 한 마디의 요구 사항이나 선전포고도 없이 [[바르바로사 작전|독일 군대가 우리 소련을 공격하여 국경선의 여러 곳을 넘어왔으며]], 항공기를 이용해 [[지토미르]]와 [[키이우|키예프]], [[세바스토폴]], 카우나스와 기타 도시들을 폭격함으로써 2백 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루마니아와 핀란드 영토로부터 공습과 포격까지 자행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대한 이 같은 공격은 문명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배신 행위입니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과 독일 사이엔 불가침 조약이 체결되어 있었고, 우리 정부에선 이 조약의 모든 규정들을 성실하게 이행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공격 행위를 저지른 것입니다. 불가침 조약이 유효한 전체 기간에 걸쳐 우리 소련의 조약 준수 여부와 관련해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던 독일 정부가 우리에 대하여 이처럼 그릇된 공격 행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 >소련에 대한 이런 약탈성 침공과 관련해 전적인 책임은 독일의 파시스트 지도자들이 감당해야 합니다. 오전 다섯 시 반, 다시 말해서 '범죄적 침략 행위'가 저질러진 연후에 모스크바 주재 독일 대사 슐렌부르크는 자신의 정부를 대신하여 우리 붉은 군대가 독일의 동부 국경 지대에 집결했다는 이유로 우리에 대해 전쟁을 개시한다는 독일 정부의 결심을 외무인민위원인 저에게 통보해 왔습니다. 이러한 통보문에 대해 저는 소비에트 정부를 대신하여 즉각 다음과 같이 대응했습니다. 마지막까지 독일 정부는 우리측에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았다는 점, 독일은 소련의 평화적인 입장과 태도에도 불구하고 소련을 공격했다는 점, 그래서 파시스트 독일은 침략자라는 점을 밝혔습니다. 정부의 훈령으로 저는 성명을 발표해 우리 육군과 공군이 국경선 어느 곳도 침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히고, 소련 항공기가 루마니아 비행장들을 폭격했다는 라디오 방송 내용은 새빨간 거짓이며, 우리에 대한 도전임을 명시했습니다. > >마찬가지로, 우리 측이 소비에트와 독일 간의 조약을 준수해 오지 않았다며 [[히틀러]]가 오늘 뒤늦게 꾸며 대서 우리를 비난한 것 역시 거짓이고, 우리에 대한 도발입니다. 우리 연방에 대한 공격은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아군에 이 약탈자들의 공격을 격멸하고, 우리 영토로부터 독일군을 몰아내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우리가 알기로 고통을 겪고 있는 독일의 국민들이나, 독일의 노동자, 농민, 지식인들이 이번 싸움을 우리한테 걸어온 것이 아니라, 이미 [[프랑스]]와 [[체코]], [[폴란드]], [[세르비아]], [[노르웨이]], [[벨기에]], [[덴마크]], [[네덜란드]], [[그리스]] 및 기타 민족들을 노예로 만든 피에 굶주린 소수의 독일 파시스트 지배자 도당이 걸어온 것입니다. 소비에트 정부는 용감한 우리 육해군과 독수리 같은 우리 공군이 조국과 인민을 위해 명예롭게 의무를 다해 침략자에게 막대한 타격을 가해 주리라 굳게 믿습니다. 우리 인민들이 오만방자한 적들의 공격을 받아 본 것은 이번이 처음만은 아닙니다. >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공격해 왔을 적]]에도 우리는 조국을 위해 싸웠으며, [[나폴레옹]]은 패배를 맛보았고 그의 최후를 맞이했던 것입니다. 오만스럽게 우리 조국을 침범한 [[히틀러]]도 똑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붉은 군대와 전체 인민은 다시금 조국을 위해, 우리나라와 명예, 자유를 위해 성공적인 전쟁을 이끌어 나갈 것입니다. 소비에트 정부는 우리 인민 모두가 노동자와 농민, 지식인, 남녀 모두가 자신들의 의무와 직무를 충실히 수행해 주시리라 확신하는 바입니다. 우리 인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굳건히 단결하여 일어서야 합니다. 우리 인민 각자는 자신과 모든 사람들의 규율과 조직적인 행동으로 극기심의 참다운 애국자가 됨으로써 반드시 적들을 무찌르도록, 붉은 군대 육해공군이 필요할 모든 걸 지원해야 합니다. 정부는 소비에트 인민 모두에게 영광스러운 볼셰비키 당과 정부, 그리고 위대한 지도자 [[스탈린]] 주위에 더욱 굳건하게 뭉쳐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우리의 목적은 정당한 것입니다. > >'''적들은 반드시 패배하고 말 것입니다.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 >[[http://epoque.egloos.com/4000748|1941년 6월 22일, 대조국전쟁 개전(開戰) 사실과 항전을 촉구하는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22 июня 1941 года" >"1941년 6월 22일" >Внимание, внимание. >주목, 주목. >Говорит Москва. Передаём важное правитель ственное сообщение. >모스크바에서 알려 드립니다. 중요한 정부의 메시지를 전해 드립니다. > >Граждане и гражданки советского союза. >소비에트 연방의 인민들이여. > >Сегодня в 4 часа утра без всякого объявления войны Германские вооруженные силы атаковали границы советского союза. >금일 새벽 네 시 선전포고도 없이 독일의 군대가 소련의 국경을 넘어 공격해 왔습니다. > >Началась '''великая отечественная война''' советского народа против немецко-фашистских захватчиков. >파시스트 침략자들에 대항하는 소련 인민의 '''대조국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 >Наше дело правое, враг будет разбит, Победа будет за нами! >우리의 대의는 옳으며, 적은 패배할 것이고,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1941년 6월 22일, 유리 레비탄 아나운서, 소련 라디오 방송. [[https://youtu.be/YsupHQtfr7k|원음 영상]] >Неужели немецко-фашистские войска в самом деле являются непобедимыми войсками, как об этом трубят неустанно фашистские хвастливые пропагандисты? >[[파울 요제프 괴벨스|허풍쟁이 파시스트 선동꾼]]들이 끊임없이 요란하게 알린 것처럼, 파시스트 독일의 군대는 정말 무적인가? >'''Конечно, нет! История показывает, что непобедимых армий нет и не бывало.''' >'''물론, 아니다! 역사는 무적의 군대란 없으며 존재한 적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1941년 7월 3일, 소련 국가 방위 위원회(GKO) 위원장, [[이오시프 스탈린]]의 라디오 연설 中. [[https://histrf.ru/lichnosti/speeches/b/vystuplieniie-po-radio-priedsiedatielia-gosudarstviennogho-komitieta-oborony-i-v-stalina-3-iiulia-1941-gh|연설 대본]], [[https://www.youtube.com/watch?v=hSTQ7HTHMvo|녹음 영상]] >'''우리 정보국은 나에게 소련에는 160개 사단과 3,000대의 전차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400개 사단과 2만 대의 전차를 파괴했으며, [[망했어요|이제 우리 앞에는 500개의 사단과 3만 대의 전차가 있다.]]''' >- '''[[아돌프 히틀러]]''' >내가 유일하게 배우지 못한 말, 그것은 바로 항복이라는 말이다. >우리 도이칠란트 역사에 항복이라는 단어가 적히지 않을 것을 온 세계에 선언하노라. >- [[아돌프 히틀러]] >신병들은 이곳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그들은 어머니를 찾다가 결국 미쳐서 죽게 된다. 8월 8일, 6중대의 총 사망자 쉰 명 중 우리는 그렇게 서른다섯 명을 잃었다. >- 독일 제18보병연대 '호케' 소령[*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 제2차 세계 대전 4부] >히틀러의 독일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 그들의 공격은 냉혹하고 무자비하다. 이 나라에 암운이 드리워졌다. >- [[이오시프 스탈린]] >Я умираю, но не сдаюсь! Прощай Родина >나는 여기서 죽지만, '''항복하진 않는다!''' 잘 있거라 [[소련|조국]]이여. >- [[브레스트 요새 방어전]] 당시 이름 없는 [[소련군]] 병사가 남긴 문구[* 브레스트는 당시 [[폴란드 제2공화국]]의 도시였으나 독일의 [[폴란드 침공]] 당시 독일의 침공에 호응해 동쪽에서 쳐들어온 소련군에게 점령당해 이곳을 기준으로 [[독소 폴란드 점령|양국은 폴란드를 동서로 분할했다.]] 분할선의 기준점이 된 이상 이곳은 당연히 소련의 가장 최전방에 위치한 도시가 되었고 [[바르바로사 작전]] 당시 독일군의 첫 번째 희생양이 되었다. 요새는 1주일 간 저항하다 결국 함락당했고 요새 내 병력 9천여 명 중 2천여 명이 전사했다. 이 문구를 쓴 병사가 생존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정황상 사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문구대로 [[1945년|4년 후]] [[소련|이 병사의 조국]]은 [[나치 독일|조국을 유린한 침략자들]]에게 [[베를린 전투|복수하는 데 성공한다]].][* 지나토프 티메랸 하불로비치라는 병사가 썼다는 설도 있는데, 해당 병사는 연대사관학교(44 소총사단 42소총연대) 생도였던 [[타타르인]] 출신 병사였다. 방어전 첫날 부상으로 포로로 잡혔으나, 두어번의 탈출시도를 감행하여 2차에 성공하고 종전까지 소속부대에서 전쟁 초기와 같은 직급인 일반사병으로 복무했다. 이후 브레스트 요새 방어전에 참여한 공훈을 인정받아 조국전쟁 2등급 훈장을 수여받는다. 소련 붕괴 이후 참전용사의 대우가 차가워진 것에 모욕감을 느끼고, 1992년 9월에 77세의 나이로 브레스트에서 열차에 투신자살한다. 출처는 '러시아 연방 공산당 <체계적인 시선> No.5호, <프라브다>지 사이트, 1997년] >나를 기다려 줘요. 나는 돌아올 거예요. >온 힘을 다해 기다려 줘요. >황색 비와 함께, >슬픔이 밀려오더라도 기다려 줘요.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기다려 줘요. >타는 듯 뜨거운 열기 속에서 기다려 줘요.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길 포기하고 >그와 함께 지난 날을 잊더라도 기다려 줘요. >먼 곳에서 쓴 편지가 >오지 않을 때도 기다려 줘요. >함께 기다린 사람들이 모두 >기다림에 지치더라도 기다려 줘요. > >나를 기다려 줘요. 나는 돌아올 거예요.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당신에게 잊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말아요. >비록 내 아들과 어머니가 >내가 벌써 죽었다고 믿고 있더라도, >내 친구들이 기다림에 지쳐서 >모닥불 옆에 앉아 내 영혼이 편히 잠들기를 빌며 >쓴 술을 한 잔 마시더라도... >기다려 줘요. 나를 위해 건배하는 >그들과 성급하게 함께하지 말아줘요. > >나를 기다려 줘요. 나는 돌아올 거예요. >모든 죽음을 능멸하기 위해. >기다리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는 운이 좋았군."이라고 말하게 해요. >그들은, 기다리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지요. >바로 그 불의 열기 속에서 >여기서 나를 기다림으로써, >나를 구원한 이는 바로 당신이라는 것을.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오직 당신과 나만이 알 거예요. >당신이 다른 사람과는 달리 >기다리는 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소련의 시인 콘스탄틴 시모노프의 "날 기다려줘요". 번역은 올랜도 파이지스의 "속삭이는 사회" 참고.] >놈들을 죽여라! 만약 그대에게 그대의 집이 조금이라도 소중하다면, 그대가 놈들을 죽이지 않으면 아무도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아라! 그러니 최소한 한 놈이라도 죽여라! 그리고 더 빨리 죽여라! 보이는 족족 죽여라! >---- >1942년, 콘스탄틴 시모노프. >졔냐가 1941년 12월 28일 아침 열두 시에 죽었다. >할머니가 1942년 1월 25일 낮 세 시에 죽었다. >레카가 1942년 3월 17일 새벽 세 시에 죽었다. >엄마가 1942년 5월 13일 아침 일곱 시 삼십 분에 죽었다. >사비체프 집안 식구가 죽었다. > '모두 다 죽었다.' > - [[레닌그라드 공방전]] 당시, 열한 살 소녀 타냐 사비체바의 일기장. 일기장의 주인도 1942년 말 병으로 사망했다.[* 출처: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Russia's War, 리처드 오버리 저, 류한수 역)] >'''죽이고 또 죽여라, 적들의 시체는 예술이며 혁명이다.''' >---- > - [[프라우다]] >그때 1학년 학생이 세 반 있었는데, 이웃 마을에 두 반, 가예보에 한 반이 더 있었습니다. [[짱친|우리는 서로 잘 알고 지냈죠]]. 그래서 나는 전쟁에서 몇 명이 죽었는지 압니다. 우리는 백 명쯤 됐는데, 전선에서 죽은 사람이 분명히 아흔두 명이에요. 나머지는 모두 불구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고요. 사지 멀쩡히 돌아온 사람은 저 한 명뿐이었습니다. >---- > - 소련군 참전 용사의 증언 >러시아의 광대함은 헤아릴 수가 없다... 사단 열두 개를 처부술 때마다 또 다른 사단 열두 개가 나타난다. > - [[프란츠 할더]] >[[http://russiafocus.co.kr/opinion/2013/06/01/40_42177|전반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소련군이 궤멸시킨 독일의 전력은 25개국 연합군 모두가 한 것보다 명백히 크다.]]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1942년 5월[* 단 해당 기사에서 소련이 나치 독일 전투기의 70%를 파괴했다는 등의 의심스러운 서술이 있으니 주의. 실제로 소련이 파괴한 비율은 높게 잡아도 20%다.] >그리고 나는 외치고 싶었다. 러시아, 벨라루스, 폴란드의 땅 속에 누워 있는 이들. 우리가 거쳐 온 땅에서 영원히 잠든 이들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동무들, 우리가 해냈소!''' >---- >- 바실리 그로스만 (소련 종군기자), "전쟁의 해들(Годы войны, Years of the war)" 중 > '''우리 소련의 승리는 제가 이뤄 낸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소련 인민들의 피와 땀이 이룩해 낸 것입니다.''' >---- > - 이오시프 스탈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